<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태오복음 1,1-16.18-23<또는 1,18-23>
오랫동안 냉담을 하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부인은 남편과 함께 성당에 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을 겨우 설득하여 새벽 미사에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모처럼 성당에 가는 남편이 오늘 좋은 복음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냉담을 풀고 앞으로 성실하게 성당에 나가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평소 남편은 신앙생활에 대하여 비판적이던 터라 더욱 복음 말씀이 남편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하필이면 마태오 복음 시작에 나오는 “예수님 족보”였습니다. 그냥 예수님 탄생까지 계속되는 말씀은 ‘누구를 낳고, 낳았으며 ……’ 하는 말의 연속이었습니다. 더구나 신부님 강론마저 신학적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이어서 그 부인은 더욱 난감했습니다. 결국 포기하는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남편은 “오늘 복음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어. 사람이 나고 죽고를 거듭하는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믿고 사는 일 같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그때부터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인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까지 구원의 역사를 이어 왔던 사람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탄생과 함께 ‘이미’ 구원이 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의 역사는 신약 성경의 첫 페이지와 함께 새롭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숱한 사람들이 ‘나고 죽고’ 하는 신약의 역사에서도 주님을 믿고 따른 사람들의 이름이 주님의 족보에 새겨집니다. 구원의 역사 속에 한 점을 지나고 있는 현재의 우리도 거룩한 신앙의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 / 매일미사 묵상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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