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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4월 16일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4.
축일 4월 16일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

축일  4월 16일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

 

St. Benedict Joseph Labre

 

 

성 베네딕투스 요셉 라브르(Benedictus Josephus Labre, 또는 베네딕토)는 부유한 상인의 15자녀 가운데 맏이로 불로네 근교에서 태어났다.

1770-1776년 사이에 그는 수차에 걸쳐 수도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너무도 신중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하였다.

 

그런 뒤에 그는 로마(Rome)의 순례 길에 나섰는데 맨발로 구걸하면서 기도 중에 걸어갔다. 그로부터 3-4년 동안 그는 서유럽의 성지 이곳저곳을 순례했는데, 이탈리아의 로레토(Loreto), 아시시(Assisi) 그리고 바리(Bari), 스위스의 아인지델른(Einsiedeln), 프랑스의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등지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어디를 가나 항상 맨발로 여행하였고, 노천이나 추녀 밑에서 밤을 새웠으며 옷은 누더기였고, 몸은 더러웠으며 음식은 문전걸식하였고, 돈을 얻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말 수는 적었으나 기도는 많았으며, 다른 사람들의 냉대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1774년부터 그는 로마에 머물렀는데, 낮에는 성당에서 기도로 지냈고, 밤에는 콜로세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건강을 해쳤기 때문에 걸인 수용소를 찾을 형편이 되었다.

마침내 그는 성당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진 후 어느 푸주한의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로마의 사람들은 이 새로운 프란치스코 성인의 높은 성덕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1881년 그는 그들의 성인으로 높이 받들어졌다. 성 베네딕투스 라브르는 서방 교회보다 동방 교회에 더 많이 알려진 수덕적인 성소를 받은 분이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된 그리스의 살로이와 러시아의 유로디비에 견줄만한 위대한 성덕을 쌓았다.

그는 또한 40시간 성체조배 신심의 전파자였다.

그는 1860년에 복자품에 올랐고, 1881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르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50-353쪽.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 성인',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323-327쪽.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3권 - '라브르, 베네딕도 요셉',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6년, 2025쪽.  

 

(가톨릭홈에서)

 


 

 

 

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 (3회)

 

거룩한 방랑 생활을 한 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는 1748년 프랑스 불로뉴 관구에 속한 아메뜨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러 번 수도생활을 시작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22살 때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듣고, 그는 부모의 집과 조국을 버리고 친척들과 모든 교류도 끊고, 나머지 삶을 가난한 거지로 이태리와 스페인의 순례지를 돌아다니거나, 로마의 성지에서 오랜 시간동안 기도하며 지냈다.

그는 사람들이 버린 옷을 입었으며, 자주 맨땅을 침대삼아 잤으며, 사람들이 건네주는 부스러기로 요기를 채웠다.

그는 계속적인 극기로 자신의 감각을 못 박았다. 도시의 사치스러움과 오락은 그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그는 말을 삼갔으며 사랑이 요구할 때만 말했다.

칭찬의 말 한마디만 들어도 그는 몸을 떨었으며 비난과 모욕을 받을 때 기뻐하였다.

외면적인 삶의 모습은 부랑자 같았으나 그 동기는 가능한 한 완전하게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매우 특별한 소명을 따르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기도는 그칠 줄 몰랐으며 마리아께 대한 사랑은 너무나 커서 “오 마리아, 오 나의 어머니시여!”라는 인사말이 저절로 나오곤 했다.

복되신 성체께 대한 헌신도 너무나 깊어서 사람들은 그를 “40시간의 헌신을 드리는 빈자(貧者)”라고 불렀다.

감실 앞에서 그는 움직이지 않고 마치 고정된 것처럼 머물렀다.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조각상 같았다고, 아니 찬미 드리는 천사나 탈혼에 빠진 성인과 같았다고 말했다.

하느님은 그에게 예언과 기적의 선물을 주셨다.

성 프란치스코의 높은 성덕을 그대로 닮은 그는 1783년 성주간 수요일에 로마의 성모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던 중에 하느님께 돌아갔다. 1881년 성인품에 올랐다.

 


 

 

 

기도

오, 하느님, 당신의 증거자 성 베네딕토 요셉에게 겸손에 대한 열정과 가난에 대한 사랑을 통해 당신만을 의지하게 하셨으니 그의 공로의 중재로 저희로 하여금 온갖 세상 것을 경멸하고 언제나 천상 것을 추구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묵상

천박하고 무식하며 멸시받을 자로 사람들로부터 간주될 때와 마찬가지로, 칭찬과 높임을 받을 때도 자기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종은 복됩니다.

사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 -영적인 권고 19-

 

(재속프란치스코 한국국가형제회 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