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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6월26일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사제 ST. JOSEMARIA ESCRIVA San Josemaria Escriva Sacerdote San Josemaria Escriva de Balaguer San Josemaria Escriva, founder of Opus Dei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
누님 까르멘 (1899-1957)과 동생 산띠아고(1919-1994) 외에 3 여동생들이 있었으나 어린 나이에 모두 사망하였다. 그의 아버지 호세와 어머니 도로래스는 자녀들에게 깊은 그리스도인 교육을 시켰다. 1915년 그의 부친의 방직사업이 실패하자 가족을 데리고 부친의 새 일자리인 로그로뇨(스페인 북부)로 이사하였다. 바로 이 로그로뇨에서 호세마리아는 처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그는 어느 수도자가 지나간 뒤 남겨둔 눈 위의 맨발자국을 보고나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무엇인가를 원하신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사제가 되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아 로그로뇨와 사라고사에서 사제가 될 준비를 하였다.
1924년 그의 부친이 돌아가신 후 그는 가장이 되었다. 1925년 사제가 된 후 그는 사라고사 교구의 벽촌에서 사목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사라고사에서 사목했다. 1927년 사라고사 대주교의 허락을 받고 시민법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마드리드로 옮겼다. 거기서, 1928년 10월 2일 피정 도중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원하시는 바를 분명히 알았다. 그는 오푸스 데이를 창설했다. 그때부터 그는 특히 환자들과 빈민들 속에서 사목을 계속하며 오푸스 데이의 발전을 위해 일하였다. 그러면서도 마드리드 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학원에서 가르쳤다.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종교박해가 심해져 그는 여러 장소로 피난을 다녀야했다. 스페인 수도권에서 탈출할 수 있을 때까지 그는 은밀히 사제직을 수행했다. 험한 피리네오산맥을 넘어 탈출하여 북부 도시 부르고스에 머물렀다.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에 마드리드로 돌아가 드디어 시민법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수많은 평신도와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한 피정강론 신부로 활동하였다.
그곳 라테란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황청 신학학술원 명예회원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자문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비오 12세에 의해 교황의 명예 고위성직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오푸스 데이의 발전을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1970년에는 멕시코)순방하였다. 1974년과 1975년에도 중미와 남미를 순방하여 수많은 사람과 모임을 가졌다.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1975년 6월 26일 선종했다. 전 세계 주교 3분의 1이 넘는 1300명 주교들을 포함하여 세계 각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교황에게 에스크리바 몬시뇰의 시복시성심사를 청원하였다. 교회법에 따라 1981년 시복시성 조사성에서 심사가 개시되었다.
1992년 5월 17일 오푸스 데이 창설자의 시복식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그 시복식에서 교황은 이렇게 강론 하였다. "복자 호세마리아는 초자연적 시각으로 만인이 성성의 추구와 사도직에로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침 없이 강론하였다." 2002년 10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의 저서들
●<길>은 그의 저서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1939년 초판에 이어 오늘날까지 38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되었고 4천 만권 이상이 발행되었다. ●<영적 성찰> (1934) ●<거룩한 묵주의 기도>(1934) ●<우엘가스의 여자 수도원장>(La Abadesa de las Huelgas)(1944) ●<에스크리바 몬세뇰과의 대화>(1986) ●<그리스도께서 지나가고 계시다>(1973) ●<하느님의 친구들>(1977) ●<십자가의 길>(1981) ●<교회와 사랑>(1986) ●<밭고랑>(1986) ●<대장간>(1987)
성 십자가 사제회
이 사제회는 오푸스 데이 사제들과 거기 속하고자하는 교구 사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사제회의 회장은 오푸스 데이 단장입니다.
이 사제회에 속해 있는 교구 사제는 오푸스 데이 정신에 따라 영적 도움을 구하며 자신의 성직을 통해 성성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오푸스 데이의 사제단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각자 자기 교구에 종속되어 오직 자신의 주교를 따라야 합니다.
자치단은 그들에 대해 법적 관할권이 없습니다. 성 십자가 사제회는 고유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직일 뿐입니다. 교회 당국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런 형태의 사제회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사제회가 제공하는 영적 도움은 그들의 성직 의무 수행을 통해 성성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사제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주교와의 일치를 촉구하며 사제들 간의 우애를 돈독하게 해줍니다. 오푸스 데이의 영성지도신부는 자치단의 통치에 관계하지 않고 오직 성 십자가 사제회의 영적 활동들에 대한 책임만을 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약 2000여 교구 사제들이 성 십자가 사제회에 속해 있습니다.
1902년 1월 9일 스페인의 바르바르또르에서 태어나 1925년 사라고사에서 사제로 서품된 그는 1928년에 성령의 영감을 받아 회적 임무를 수행하면서 스스로가 축성된 자로 생활하는 새로운 형태의 '오푸스 데이'를 창설하였다. 1930년에는 여성 사도직으로 발전시키고, 1943년에는 십자가의 사제회를 창설하였다.
'오푸스 데이'는 1950년 교황청으로부터 승인 받고, 1982년에는 추기경의 직속 단체로 승격되었다. 항구한 기도와 모든 덕에 대한 과감한 실행으로 '오푸스 데이'를 세계적으로 성장하게 하고 계속 교회를 위해 일하였다. 1975년 6월 26일 운명하여 로마에 있는 평화의 모후 성당에 안치되었다. 이 무렵 '오푸스 데이' 회원은 5개 대륙 80개국에 6만 명이 넘었다. 1992년 5월 17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고, 2002년 10월6일 시성되었다.
* '오푸스 데이'란 "하느님의 일"이라는 뜻으로 기도와 회개와 성무 활동을 열심히 하여 나날을 성화 하자는 운동이다.
(우표로 보는 성인전에서)
영혼을 일깨우는 다이너마이트 / 라몽 로페즈 몬시뇰
(...) 그곳에서 저는 "길"이라는 작은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제게 마치 '영혼을 일깨우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았습니다. (한국 가톨릭다이제스트 2003년 4월호 "내가 만난 가톨릭"에서)
저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한국 "가톨릭다이제스트"의 상냥하지만 끈질긴 요구에 못 이겨 스페인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거슬러 더듬어 봅니다.
1968년이 되던 해, 저는 고등학교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수학, 화학, 물리 등의 과목을 공부하고 또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저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자기와 함께 오푸스 데이 센터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저를 이끌었습니다. 사실 저는 오푸스 데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요. 그곳에서 저는 "길"이라는 작은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제게 마치 '영혼을 일깨우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았습니다.
나중에 올 사람을 위하여 길을 내십시오. 그대의 믿음과 사랑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십시오. 불순한 미움의 씨를 뿌린 자들이 남긴 더럽고 비열한 흔적을 그대의 사도적 삶을 통해 지워 버리십시오. 그리고 그대 가슴 속에 간직한 그리스도의 불꽃으로 세상의 모든 길을 밝히십시오."("길" 중에서)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어떤 느낌이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어떤 것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한 인간이 하느님의 계획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마주하였을 때 그의 영혼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 지…. 그것은 밝고 눈부신 깨달음이었습니다. 반드시 굉장한 이적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계획과 마주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생한 각성을 통해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 사제나 수도자에게만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열려있다는 것을 그 때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베드로, 안드레아, 요한, 야고보 그리고 그 밖의 제자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결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지만 삶의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일과 친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유익한 일을 했고, 그들이 속한 마을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으며, 설령 그들이 몰랐다 할지라도 국가에 기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의사라는 직업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품위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의대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오푸스 데이 센터에 처음 발걸음을 하고 난지 바로 얼마 안 되어 저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 성인, 즉 진정한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의 놀라움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혹은 이후 제가 원하는 무엇을 하는 동안이라도 제가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아신다면….', '하느님께서 내가 얼마나 바쁜지를 아신다면…. 그런데 주님께서는 저의 개인적인 처지와 가능성을, 또 저의 꿈과 한계를 잘 알고 있는 바로 그때 저에게 성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5,48)는 말씀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저는 매사에 신중을 기했고 저의 일상생활을 하느님께 봉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좀더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들을 통과하는 것이 어떤 새로운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왜 내가 그러한 일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새로운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드리드에 있는 의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와 병원을 오고 가며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의학 공부를 마친 후, 다른 전공의처럼 의사로서의 앞날을 준비하고 있던 중, 저는 일본에 있는 오푸스 데이의 사도직사업을 위해 일본에 갈 것을 부탁 받았습니다. 저는 그전까지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 그대로 멀고 먼 나라 극동아시아의 일본에 가게 되었습니다.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15년이 흘렀습니다. 일본어를 배우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으며, 또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수많은 개종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언제나 모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말씀하셨듯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모험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어떤 사람의 꿈보다 더 크고 더 흥미진진합니다.
먼 과거는 아니지만, 1975년 당시 저는 일본에서 문자 그대로 정말 '외국인'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저와 마주친 일본인들의 놀라움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시골일수록 그 정도는 더 심했지요. 그때까지 스페인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저를 당연히 미국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성패는 하느님께 달려있다."는 의미를 그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은 늘 아름다웠습니다. 이 시기에 오사카, 교토, 나가사키, 오이타 등의 도시에 오푸스 데이 센터가 지어졌고 선교사업도 확장되었습니다. 성스러운 믿음의 씨앗이 모든 곳에서 싹을 틔우고 이질적인 문화적, 정신적 전통에 융화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제 인생의 ‘모험’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으며 거기에 전혀 후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더 많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성직자로서의 저의 소명을 받아들이고 로마에서 은총의 귀중한 3년을 보내고 다시 일본에 돌아왔을 때 제 친구들은 온통 검은색 사제복 차림으로 바뀐 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겉모습이 조금 바뀐 것만으로도 저는 그들에게 이미 멋진 교리 교육을 한 셈이지요. 새로운 책임을 맡게 되어 저는 필리핀으로 갔고 지금은 홍콩에서 살고 있습니다.
과거를 다시 돌아보아도 모든 시간 제 손을 잡고 이끌었던 분은 바로 하느님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성서에서 다음 구절을 읽을 때면 거기에서 언제나 압축된 제 인생을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잔치 시간이 되자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자기 종을 보내어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오라고 전하였다."(루카14,16-17)
고귀하고 아름다운 파티에 참석하라는 초대를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느님이 계획하고 불러주신 모든 초대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도 하셨지만 또한 베다니아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도 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는 일이 잘 안 풀려 어려울 때나 혹은 순조로울 때나 아주 작은 일에서 거룩한 의무를 다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성인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매 순간 작은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십시오.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십시오." ("길" 중에서)
하느님께서 부르시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거룩함은 전 우주의 보편적 소명입니다. "하느님이 직장에서 그대를 찾으셨다고요? 그대는 놀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이것이 아주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서 저를 찾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물질하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셨고 세관에 앉아있던 마태오를 찾으셨던 것과 같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바울로는 그리스도인의 씨를 아주 없애버리려고 박해 활동에 열중해 있을 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길" 중에서)
일상의 노동과 평소 수행하는 직업이야말로 완전함에 이르는 우리의 거룩한 소명의 한 부분입니다. 오푸스 데이는 이렇게 우리를 거룩함에로 이끄는 보편적 소명을 깨우쳐주고, 정직하게 직업 활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제 글을 마무리해야겠군요. 지금까지 제 자신의 나약함과 투쟁하고 저의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과연 거룩함이란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은 하느님과 그가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과 친구가 되는 것, 그리고 우리를 이루고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던 과거 어느 날, 아마도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저와 나누고 싶어 오푸스 데이 센터로 절 초대했던 친구처럼 말입니다.
에스크리바 [Escriva de Balaguer y Albas, Josemaria, 1902.1.9~1975.6.26]
이 단체는 1975년 에스크리바가 죽을 무렵 회원이 80개국 6만명에 이르렀으며, 프랑코 지배하의 스페인에서 불의한 경제 및 정치권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아라곤 출신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사라고사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그곳 대주교구 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1927년 3월 28일에 사제 임명을 받았다.
내전 기간 동안 숨어 지내며 반(反)성직주의를 내세운 공화주의자들을 피해 다닌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마드리드에서 사목활동을 했으며, 1946년 로마로 영구 이주했다. 다음해에는 몬시뇨르(고위성직자) 직위에 올랐으며, 1947~50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오푸스데이'에 대한 공식 승인을 받아냈다.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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