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몇 달 동안 병원 생활을 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가끔 아빠의 손을 잡고 "내가 아무래도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 같구나" 하고 말했다. 할머니가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담당의사의 말을 아무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당신이 떠나갈 시간을 알고 있었다. 가끔씩 의식을 잃곤 하면서도 할머니는 기어코 그 해 겨울을 이겨냈다. 그리고 6월 어느 화창한 날,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말한 것보다 4개월이나 더 사셨다.
할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엄마는 가족들의 겨울옷을 장롱 속에 넣고 있었다. "엄마, 우리가 이런 거, 할머니가 정말 몰랐을까?" "모르셨을 거야. 몇 달을 마루에도 한번 못 나오시고 누워만 계셨던 분이 뭘 아셨겠어? 나중에 엄마 얼굴도 못 알아보셨는데…." "하긴 그래."
우리 가족은 6월의 초여름에도 할머니 방에 들어갈 때면 늘 겨울옷을 입었다. 어떤 날은 장갑을 끼고 목도리까지 하고서 할머니 방에 들어간 적도 있다. 심지어 나는 할머니 손을 잡기 전에 차가운 얼음을 만져서 아직도 겨울이어서 손이 차갑다는 것을 느끼게 해 드렸다. 그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던 할머니에게 우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봄이 오는 것을 막아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그토록 소중한 4개월을 할머니와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데려가 버린다. 하지만 할머니에 대한 가족들의 사랑이 할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탄길, 이철환]
<월간 좋은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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