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묵상글] 떠나라. (창세 12, 1)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8.

[묵상글] 떠나라. (창세 12, 1)

- 주님 공현 대축일 -

 

 

우리가 잘 아는 세계 1위 필름 회사인 ‘코닥’이 몇 년 전 더 이상 필름 생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필름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지 못했을까요? 사실은 디지털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회사가 코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결국 자신들이 개발한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자신들의 매출이 줄어들어 제 살 깎아먹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개발하지 않는다고 다른 회사들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코닥은 필름으로 자족하고 자신만만해 하다가 디지털 카메라를 내놓은 다른 회사들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소니의 ‘워크맨’도 그렇습니다. 워크맨은 처음에 한 작은 회사에서 이용되는 녹음기를 사장이 이어폰을 만들어 녹음 대신 걸으면서 그것으로 음악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음악은 집에서 조용히 듣는 것으로 생각 되었던 시대에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상용화하는 데는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니에서는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워크맨을 만들어 내었고 세계에 4억 대를 판매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명성을 잃었습니다. MP3 Player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소니는 이 경쟁에서 옛날 명예를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모든 노래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MP3 Player의 시대도 이젠 끝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쉴 새 없이 발전하는 전자기술 환경에선 한 번 뒤쳐진 기술은 좀처럼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회사들도 손놓고 기다려주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회사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자신들이 잘나가는 것에 만족하고 교만해 하였습니다. 남들이 자신들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교만이 결국 기술개발을 저해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가장 높게 떠오른 태양은 다시 저물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하셨다는 말도 맞겠지만, 어디 한 곳에 머무시지 않으셨다는 말도 됩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살던 곳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떠나야 더 큰 복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최고 부자 빌게이츠는 어느 한 기자 인터뷰에서 “당신은 어떻게 뛰어난 두뇌로 세계적인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빌게이츠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빌게이츠는 “저는 유별나게 머리가 똑똑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지혜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생각으로 옮기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노력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기업가는 “마누라 외 에는 다 바꾸어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변화하고자 열망하는 자에 의해 발전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변화를 행동으로 옮기는 자가 세상을 발전시켜 갈 것 입니다. Change (변화)에 'g' 자를 'c' 자로 바꾸어 보십시오. Chance(기회) 가 됩니다.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옵니다. 변화는 기회이며, 하느님은 그 기회를 통해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두 상반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나는 헤로데 임금과 수석 사제들, 또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겐 더 이상 변화가 필요 없습니다. 자신들을 변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적입니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메시아란 아기는 자신들과 한 하늘아래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또 한 부류는 선택받지 못한 민족의 사람들이지만 이 세상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불만이 있거나 가난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낙타 떼를 이끌고 비싼 선물들을 들고 먼 길을 여행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천문학자들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먼 나라들의 왕들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먼 하늘 뒤의 세상을 알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공평하게 비를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한 것에 목말라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별을 띄워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별이 사라지게 하여 헤로데를 방문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메시이가 탄생하였다는 것이 온 유다 땅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공평하게 당신을 찾아올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태양이 떠오르면 태양을 싫어하는 야행성 동물들은 어두운 곳으로 숨어버리듯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빛이 싫어 빛을 없애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빛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머무는 집까지 빛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임금을 경배하고 믿음과 구원을 지니고 돌아갔고, 헤로데 일당은 대 학살을 벌임으로써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졌습니다.

 

이 두 부류의 특징은 아주 단순합니다. 한 부류는 하늘의 뜻을 찾아 끊임없이 변화하려 했던 사람들이었고, 또 한 부류는 그 표징에 눈을 감아버리고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혹시 우리들도 정체되어 있지는 않은지요?

 

제가 미사를 하면서 서로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하고 양팔을 위로 올리라고도 하며 어떤 때는 서로 안아주면서 평화의 인사를 하라고 하고 또 아멘이라고 대답하라고 하면, 어떤 분들은 “여기가 뭐 개신교 예배당입니까?”라고 하며 불편해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 그런 것이 개신교 것이라고 정해 주었습니까? 다윗도 계약의 궤 앞에서 껑충껑충 뛰며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그를 비웃었던 사울의 딸 미칼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어 더 이상 아기를 못 갖는 수치스러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노래보다 더 큰 찬미가 춤입니다.

 

또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면, 왜 다른 성당에서는 하지도 않는 것을 새로 오신 신부님이 돈 이야기부터 하느냐고 불평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것이 별빛입니다. 제가 쫓고 있는 별빛이 그것을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하라고 하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는 그렇게 말해주는 사제가 별빛입니다. “움직이라, 변화해라, 떠나라.”라고 외치는 하늘의 빛입니다.

 

앞으로도 빛은 계속 앉아있지 못하게 새로운 길을 제시할 것입니다. 결국 끝까지 빛을 따르는 사람들만이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정도로 오래 신앙생활 해 왔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자리를 박차고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도 경쟁이라고 말합니다.

“경기장에서 달리는 이들은 모두 달리기는 하지만, 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시오.” (1코린 9, 24)

 

그리고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만나 복을 받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이 되도록 아브라함에게 하신 명령을 오늘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 12, 1-3)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