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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묵상글] 마음속 깊이 새겨 간직하였다.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8.
[묵상글] 마음속 깊이 새겨 간직하였다.

[묵상글] 마음속 깊이 새겨 간직하였다.

- 첫 토요일 성모신심미사 -

 

 

저의 첫 번째 기억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입니다. 그 분들 곁에서 기어 다니기도 하고 재롱도 떨곤 했는데 삼 개월 새에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죽음을 많이 두려워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어차피 죽는다면 행복하게 살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엇이 되어야하는가를 고민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돈 많이 벌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는 사제가 되는 길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조부모님의 죽음은 이렇게 저의 첫 기억으로서 제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저를 사제까지 되기까지 이끌어주었습니다.

 

또 하나 커다란 기억은 어렸을 때 외가에 어머니와 함께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마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친정은 부산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친정에 잠깐 오셨습니다.

경상도 말을 처음으로 듣는지라 저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렴풋이 들리는 말은 어머니가 저를 놓고 가면 당신들이 대신 저를 키워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른들 말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안팎을 돌아다녀 봐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정말 저를 두고 가셨다는 생각에 서럽게 많이 울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놀라셔서 나와서 왜 우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없어서 그런다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어머니는 목욕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외가댁이 목욕탕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말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목욕하고 나오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저는 이 기억을 마음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해질 때마다 이 기억을 되살려내곤 합니다.

이 기억이 저에게 주었던 가르침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인간의 어머니시오 원천이신 하느님을 떠나 혼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존재적 불안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던 사건이었고 행복을 잃지 않기 위해 그렇게 더 주님께 꼭 붙어 있으려 했습니다.

 

또 하나 제 마음속에서 저와 끊임없이 함께 살아왔던 기억은 제 열 번째 생일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열 살 이전에는 네가 다치고 잘못되면 어머니 책임이지만, 열 살 이후에는 너도 어른이니 네 자신의 책임은 네가 져야 하는 거야.”

 

어머니께서 직장에 다니셔야 해서 제가 걱정되어 하신 말씀이지만 그 이후로 이 말씀은 제 마음속 깊이 박혔고 제 모든 책임은 제가 지면서 저의 인생을 살려고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주위의 반대에 상관없이 사제의 길을 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인생은 저의 것이고 물론 그 책임 또한 제가 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간직되고 있는 기억들, 또 그것을 곰곰이 되새기면 나를 만들어 가는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저는 지금에 와서야 그 말씀도 어머니를 통해 주님께서 저에게 해 주신 말씀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주위의 사건을 통해서도 저희에게 말씀을 하는 것이고, 그 말씀을 잘 간직하고 되새긴다면 그 분의 뜻대로 우리가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귀한 것은 집안 깊숙이 넣어두고 잘 간직하게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소중히 여겨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되새기며 묵상하실 줄 아셨던 분이 마리아이십니다. 성모님은 ‘말씀’ 자체를 받아들이고 마음 속 깊이 새겨 ‘잉태’하셨던 분입니다. 잘 간직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좋은 선물을 주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그만큼 모든 것을 잘 간직하고 되새기실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천사들의 말을 듣고 목자들이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예수님께 경배하러 오셨던 사건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여 되새기셨다고 합니다.

또한 성전에서 아버지 집에 계셔야 함을 보여주시기 위해 잠시 육적인 부모를 떠났던 사건도 마음 속 깊이 새겼다고 합니다.

성모님은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 간직하며 묵상할 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묵상은 말씀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말씀은 비단 성체와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말씀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것들을 잘 묵상하고 받아들이면 성모님처럼 말씀 자체까지도 잘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수님은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라고 하십니다. 즉 기억하는 것이 그 분을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마음에 새겨 간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참 ‘말씀’ 또한 자신 안에 간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어떤 것도 우연이란 없고, 하느님께서 이유가 있어서 발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함께하심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기를 잉태한 것을 잊고 아무 것이나 먹고 아무 행동이나 하는 사람 안에 임마누엘이 머무실 수 있겠습니까? 오직 성모님만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잘 간직할 줄 아셨던 분이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온전히 맡기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닮기 위해 모든 것을 마음속에 새겨 간직하고 묵상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겠습니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어온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어온 것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살아 있으면 여러분은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1요한 2, 24)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