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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5.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주님 공현 전 수요일

 

 

2006년 MBC 설 특집 '여성! 100대100' 고부간 설문 조사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거짓말 1위는 452명의 시어머니가 응답한 "아가야, 난 널 딸처럼 생각한단다."였습니다. 그 외에도 "생일상은 뭘… 그냥 대충 먹자꾸나."(227명), "내가 얼른 죽어야지."(175명), "내가 며느리 땐 그보다 더한 것도 했다."(87명), "좀 더 자라. 아침은 내가 할 테니."(59명) 등입니다.

 

반대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하는 거짓말을 순위가 낮은 것으로부터 2위까지 보면, "전화 드렸는데 안 계시더라고요."(172명), "어머니가 한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202명), "용돈 적게 드려 죄송해요. 다음엔 많이 드릴게요."(245명)입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하는 거짓말' 대망의 1위는, 모두가 공감이 가는 것인데, "어머님 벌써 가시게요? 며칠 더 계시다 가세요."(362명)로 조사되었습니다.

양 편의 1위만 보고 판단하자면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딸이나 가족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와 오래 있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관계'와 '함께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서로 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는 관계를 원하지 않고,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와 머물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듣고 그의 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찾느냐?"고 물으십니다. 무엇을 찾느냐고 물으시는데 대답은 좀 물음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라삐는 스승님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오후 네 시쯤이었다고 합니다.

 

왜 요한은 라삐의 뜻과 그 때의 시간을 기록해 놓았을까요? 그들에겐 아직 그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스승님일지라도, 또 시간이 아주 늦어서 돌아오지 못할 정도가 아닌데도 그 분과 함께 머무르려 했다는 그들의 의지를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닐까요? 그들은 그 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하룻밤을 라삐, 즉 선생님과 함께 묵습니다.

 

다음날 안드레아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요한은 또 '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의미라고 씁니다. 즉, 하룻밤 지내기 전의 그 분은 스승님이었지만 하룻밤 지내고 나서는 그 분을 메시아로 봅니다. 다시 말해 그 분과 함께 머물면서, 그 분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겼기에 그 분과 오래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래 머무르려는 '의지'가 있어야 믿음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에는 한 분이 찾아와서 신앙생활을 10년 넘게 했는데 믿음이 커지지가 않는다고 고민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아직도 아내를 따라서 성당에 억지로 나올 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께 하루에 그리스도와 어느 정도나 함께 머물려고 노력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대답은 늘 같습니다. 일상이 바빠서 거의 그분과 머물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