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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3.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주님 공현 전 월요일

 

 

어떤 분이 저를 집에 초대하여 여러 맛있는 음식을 해 주셨습니다. 첫 인상으로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준비가 철저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음식 준비를 한 것 같아, 너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주님께서 다 하신 거죠."

저는 이 분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 자신 이야기만 하십니다. 자신의 믿음을 간증이라도 하듯 신앙을 폼 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에 그 분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데 냉담자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의 문제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이, 그 분과 자신이 혼합되어 구별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사랑을 하게 되면 닮아갑니다. 그러나 닮아가는 것이 있는가하면 구별되는 것도 더 커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고해성사를 몇 년 동안 하지 않으신 분들의 고해는 아주 짧고 단순합니다.

“몇 년 동안 냉담했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고해를 자주하시는 분들은 일반적으로 고해 내용이 매우 깁니다. 그만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잘 깨닫습니다.

 

우리의 작고 부족함은 하느님의 크시고 완전함 앞에서 더 크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그 분은 더 완전한 하느님으로 더 커지시고 나는 그분의 크심 앞에서 더 작아지고 미약한 존재임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길고 날카로운 칼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찔러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칼집입니다. 이렇듯 일치한다는 것은 상대와 아주 달라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는 한 욕조에서 남. 여 아기들을 함께 집어넣고 목욕을 시켜도 괜찮습니다. 그들은 신체적으로 조금은 자신과 다를 수 있어도 남. 여의 구별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자신과 다른 성별의 아이에게 느끼는 것이 달라지고, 남. 여가 완전히 다른 것임을 알게 될 때, 비로소 혼인할 수 있는 나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생리적인 면에서도 서로 많이 다름을 느끼게 됩니다.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이 서로 완전히 다름을 인정할 때 혼인을 하여 아기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다가갈수록 서로 구별되는 것이 사랑이지, 마치 그 분이 나인 것처럼 혼동하는 것이 일치가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똑같아져야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자기 것을 강요하기 쉽습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바닷새 이야기에서, 노나라 임금이 날아온 바닷새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술과 음식을 강요하여 결국 바닷새를 죽게 만들었듯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와 내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또는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 분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말한 것처럼, 자신과 그리스도가 서로 다르다고 느끼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그 분과 일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알고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와 나와의 차이점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육지에만 살아온 사람이 바다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더니 조금 있다가 멀미가 나서 며칠 동안 매우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 때 깨닫습니다.

'바다는 육지와 다르구나.'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다에 적응이 되고 매우 편해집니다. 그리고 다시 육지로 오릅니다. 그랬더니 반대로 육지가 흔들림을 느낍니다. 이미 몸이 바다에 적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느낍니다.

'육지는 바다와 다르구나.'

 

그렇습니다.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에게 건너갈 수 없었기에 자기 주관으로만 일치하려 해서 실패한 것입니다. 사랑하면 상대의 마음으로 건너가야 하고 상대에게 적응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와 내가 서로 다름을 알게 되어 사랑 때문에 강요하는 일이 없어지게 됩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서로 혼합되지 않고 더 명확히 구별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게 서로 다르기에 자신의 것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한 분이시지만 성부와 성자, 성령께서 서로 완전히 구별되시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똑 같은 옷을 입히려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