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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사랑받는 이유 / 성 요한 사도 축일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1.
사랑받는 이유 / 성 요한 사도 축일

사랑받는 이유 / 성 요한 사도 축일

 

 

제가 어제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어서 거의 10년 만에 전철을 타 보았습니다.

신학생 때 유학가면서 못 타게 되었고 돌아와서는 사제가 되어 차로만 다니다가 다시 또 몇 년 동안 유학 나갔다가 돌아오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표를 전철 표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몰라서 기차표 끊는 곳으로 가서 그것을 끊다가 창피를 당했고, 또 기계로 표를 끊고 들어가다가 표를 찍지 않고 그냥 통과하다가도 또 창피를 당했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처지로 오랫동안 전철을 이용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너무 풍요만 누리며 살아온 것을 다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남이 운전해주는 좋은 차, 좋은 자리, 좋은 음식 등, 대접만 잘 받다보니 저절로 제 자신이 그런 위치에 있어야 하는 줄 착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슈바이쳐 박사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 랍바네 대병원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부족하여 모금 운동에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한번은 모금 차 그의 고향에 돌아왔는데, 고향 역에는 그를 영접하려는 많은 친척친지와 동료들이 모여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으레 1등 칸이나, 2등 칸에서 나올 줄 알고 그 앞에 모여 있었는데, 박사는 맨 뒤쪽인 3등 칸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달려가 얼싸 안으면서, “어째서 3등 칸에 타셨습니까?”하고 원망조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박사는 피시식 웃으면서, “4등 칸이 있어야지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한 분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겸손하면 돼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자신만을 높이려는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고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오늘 요한은 자신을 표현할 때 ‘사랑받던 제자’라고 칭합니다.

그가 요한복음을 집필하였지만 저자를 알지 못한 채 복음만 읽으면 그 필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자신의 복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받던 제자’라고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구원을 위한 절대적인 역할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셨던 성모님의 겸손함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다른 많은 것에서도 성모님을 닮았는데, 마치 성모님이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당신 태중에 맞아들이셨던 것처럼, 세례자 요한을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입니다.

또한 성모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고통을 함께 하시기 위해 골고타 언덕에 함께 오르신 것과 같이,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쳤음에도 요한만은 십자가 밑을 성모님과 함께 지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일원으로 남아계십니다.

즉 성령강림 때 교회 안에 머물면서 베드로 위에 세우신 교회에 순종하는 한 여인으로 만족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베드로였고 또 자신이 먼저 무덤에 도착하였지만 들어가지 않고 베드로를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반석이요 수장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순종하는 것은 그 지도자들의 영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스도께서 뽑아 세우셨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도 성모님을 닮았습니다.

 

모든 죄가 교만에서 들어왔고, 그래서 모든 덕은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에서 비롯되듯이, 이런 모든 행위는 자신을 버린 겸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예수님께 사랑받지 않았겠고, 또 다른 동료들로부터 사랑받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결정적으로 성모님께로부터 사랑받아 그 분을 평생 자신의 집에 모시는 영광까지 받게 됩니다.

 

사랑은 겸손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를 본받는 것이 결국, 성모님과 나아가서는 그리스도까지 본받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항상 뒤에 오는 사람일지라도 먼저 영광을 받도록 밖에서 기다려주는 그런 사람 쪽을 선택하도록 합시다.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