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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1월 2일 성 세라핌(Seraphim) / 사로프(Sarov)

by 파스칼바이런 2012. 4. 21.

축일 1월 2일 성 세라핌(Seraphim)

신분: 수도승, 은수자, 신비가

활동지역: 사로프(Sarov)

활동연도: 1759-1833년

같은이름: 쎄라핌

 

 

사로프의 성 세라핌(Seraphim)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인 성 세라핌은 1759년 7월 19일 러시아 쿠르스크(Kursk)의 동방교회 가문에서 프로코르 이시도레빅 모쉬닌(Prokhor Isidorevic Moshn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건축업자인 아버지 이시도레빅 모쉬닌이 일찍 사망하자 그의 어머니는 남편이 완성하지 못한 교회 건축을 도맡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기적적인 사건을 체험한 그는 상인이 된 형을 돕던 중 마음속으로 수도생활로의 부르심을 깨달아 1776년 동료들과 함께 키예프(Kiev) 순례를 떠났다. 수도생활에 대한 확신을 가진 그는 1778년 19세의 나이로 사로프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 후 1786년에 서원을 하고 히브리어로 '열정'이라는 뜻의 세라핌이라는 수도명을 받았으며, 179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듬해 그는 사로프에서 몇 마일 떨어진 숲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위하여 수도원을 떠났는데, 자신의 수도원을 비롯하여 많은 수도원으로부터 원장직을 의뢰받았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1804년에는 세 명의 강도들에게 심한 매를 맞아 곧 수도원에 옮겨졌으나 성모 마리아에 의해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숲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그 뒤 그는 절대적인 침묵과 고요 속에서 전 세계의 회개를 위한 기도를 하며 생활하였다. 당시는 나폴레옹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1810년 질병과 수도원장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 때문에 사로프의 수도원으로 되돌아왔지만 그는 수 년 동안 격리된 작은 방에서 완전한 은둔생활을 하였다. 1815년에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한 후부터는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자들에게 영적 상담을 해주었다.

 

그리고 66세 되던 1825년 숲속의 은둔소로 되돌아가 영적 사부 혹은 영성 지도자로서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었다.

 

1832년부터 죽음이 가까워짐을 깨달은 성 세라핌은 영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묘 자리를 미리 정해 놓고 자신의 방 입구에 놓인 관 앞에서 묵상에 잠겨 있다가 종종 졸도하기도 하였으며, 이때 많은 기적적인 행적을 남겼다고 한다.

 

이듬해 1월 2일 그는 수도원에 있는 그의 방에서 성화 '우리의 부드러운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그의 옷은 그의 손에서 떨어진 촛불에 불타 버린 상태였다.

 

성 세라핌이 사망한 후 그의 무덤을 참배하던 사람들에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1903년 1월 29일 러시아 정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교령을 반포한데 이어 그 해 7월 19일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성화속의 사로프의 성 세라핌(Serap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