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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전례 & 미사

[전례상식] (01) 그리스도인의 삶과 전례 ①

by 파스칼바이런 2013. 5. 12.
그리스도인의 삶과 전례 (1)

 

 

(1) 그리스도인의 삶과 전례 ①

 

 

전례와 그리스도인의 삶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진정한 ‘감은제’(感恩祭 양 = Eucharistia)가 되어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가득한 찬미가 될 때에, 우리는 전례를 올바르고 풍요롭게 거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례의 기본 정신에 맞추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갈 때에 우리는 전례를 올바로 거행할 능력을 나날이 더해 가게 된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표현과 정신에 따라 다시 정리해 보면, “성사, 특히 성체성사의 집전은 우리가 성사가 될 때에만 그 목적한 바에 이를 수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가시적인 표지요, 하나의 효과적인 말씀이다.”고 말할 수 있다.

 

구원의 신비에 참여시키는 전례

 

우리는 성체성사를 비롯해 다른 성사들을 거행하면서 신비스럽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에 접촉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육화의 신비가 그 절정에 이르고 재림을 앞당겨 체험하게 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영광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한다. 전례 안에서 교회는 그리스도께로부터 풍요로운 선물을 받은 신부로서 감사를 느끼며,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전적으로 전례 거행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은총의 힘으로 살아간다. 성사의 거행을 통해서 교회는 자신의 삶의 법을 배우고 자기 실존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그리스도께 온전히 속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믿음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최종적인 완성에 이를 때까치 자신을 아버지께 드린다. 그리스도인 실존의 이러한 양상은 전례 거행을 의무로 갖는 모든 신자들에 의해서 확인되고 증명되어야 한다. 전례 거행의 의무는 어떤 교회법적인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례로써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는 성세로 인하여 이에 대한 권리와 직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전례 헌장, 14항).

 

 

1. 신앙의 거행

 

전례는 우리의 신앙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순전히 외적인 형식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신앙은 전례 안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확고한 결정으로 확인된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크고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감사로 가득 찬 신앙을 통해서 당신 죽음으로 이룩하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안으로 들어간다. 신앙은 이렇게 그리스도 신비의 체험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기쁘게 받는 것이며, 자기 존재의 근본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다.

 

전례를 올바로 거행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실존적으로, 신앙이란 교회가 제시하는 개별적 진리와 가르침을 수용하는 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참 생명의 길이신 주님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알고 있다. 신앙은 전례 거행 안에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그 깨달은 바 - 그리스도의 현존을 보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써 우리에게 온전히 아버지를 보여 주셨고, 당신을 선물로 내어 주셨다.

 

우리가 신앙으로 전례를 거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삶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것을 뜻하고, 또 그러한 참여를 청하는 것임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믿는 존재’라는 사실이 의미 충만하게 된다. 그러므로 행하려는 의지를 가진 전례의 거행은 신앙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바라보는 더욱 날카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에 준거한 삶은 우리를 더욱 생기 있고 기쁜 태도로 전례에 참여케 한다.

 

 

2. 신뢰하는 신앙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생기 있고 참된 성사적인 참여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선 신뢰에 찬 자기 증여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버지,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루가 23,46)와 같은 태도이다. 신앙은 아버지 하느님의 모든 선물을 기쁘게 받는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삶과 죽음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부르며 보여 주신 신뢰 안에 하나가 된다.

 

참되게 거행되는 전례는 시험과 고통의 시간에, 무엇보다 죽음을 앞에 둔 순간에 이르렀을 때에 힘을 갖게 한다. 감사와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신뢰를 통해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생기 충만한 참여로 이해할 때, 파스카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힘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죽는다는 것은 마지막 승리이고, 구원의 신비에 결정적으로 완전하게 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3. 사랑하는 신앙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일치의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보여 주는 하느님 사랑의 계시이다.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모든 이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모든 이를 당신 안에 부르시고, 당신 사랑에 흡수하셨다.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 사업을 계속하시는 성사이다. 그러기에 성찬의 참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통공이며, 크신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대한 참여이다.

 

성찬의 참여를 비롯한 모든 성사의 거행은, 우리가 지녀야 할 흠없이 완전한 실존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자신의 사랑을 실현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뒤에, 우리는 성령의 힘을 받아 그리스도 자신의 사랑으로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다. 이때에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에 젖어 들고, 하느님 사랑의 축제를 지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 지닌 ‘거룩함’이 구체적인 삶 안에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 성취된다.

 

전례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인류와 맺으신 구원의 계약을 성대하게 거행한다. 우리 개인의 구원과 그리스도와 맺은 계약에 대한 우리 각자의 충실은 절대적으로 모든 사람들에 대해 갖는 우리의 연대성에 달려 있다. 교회와 함께, 교회를 위해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주님의 구원의 신비에 참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든 사람의 구원과 연대성을 위하여 세워졌기 때문이다.

 

 

4. 하느님을 찬미하는 믿는 이의 삶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전생애를 통해서, 특별히 당신 죽음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가장 완전한 예배자로 나타난다. 그 죽음의 구원 신비는 성찬례의 거행 안에서 성사적으로 재현되며, 모든 성사 거행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자가 나타나셨다(요한 4,23). 이로써 구원의 시간이 도래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밀접히 하나가 됨으로써만 참으로 우리의 전실존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것이 아버지께 드리는 찬미가 되게 하신다.

 

전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드리는 참다운 찬미와 예배를 배우고, 그에 비추어 우리의 모든 일을 점검한다. 또 그러한 점검을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아버지께 흠숭을 드릴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수행할 때만 우리가 발하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예배의 신앙과 희망과 사랑이 될 수 있다.

 

[경향잡지, 1994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