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리스도인의 삶과 전례 ②
전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가장 좋은 안내자이다. 전례에 의해, 즉 온전히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흠숭에 의해 양성된 사람은 윤리적 의무를 하나의 명령으로만 이해하는 사람과는 전적으로 다른 양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에게서 윤리는 그가 살아가는 세상의 구체적인 삶 안에 주님의 현존을 실현하는 것이다.
역사를 구세사가 되게 하는 전례
성체성사와 그 밖의 모든 성사들은 우리에게 구원의 신비 안에 계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빵”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요한 6,33)이시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성체성사에서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처럼 역사의 변형을 위하여 일한다.
1. 감사의 기념으로 풍요로워지는 과거
성체성사뿐만 아니라 모든 성사를 포괄하는 전례는 한마디로 기념적인 거행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구세사의 사건을 ‘기념하여’ 거행하는 것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루가 22,19; 1고린 11,24-25).
이미 구약의 전례도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 업적에 대한 찬미였다. 그것은 계속되는 구원과 그에 대한 찬미로서 ‘감사의 기념’이었다. 우리가 전례 거행을 통하여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구세사의 한 사건을 기념할 때 과거가 우리를 위하여, 또 우리를 통하여 풍요로워진다. 그러기에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에 의해서 실행되는 기념적 전례의 거행은 역사의 창조자가 된다. 우리는 전례 안에서 깨달음과 감사의 정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것, 특별히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죽음과 성령의 파견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한다.
그러나 이 과거는 단순하게 기억되고 서술되는 것이 아니다. 부활하시어 영광에 오르신 예수께서는 그 과거를 오늘 우리를 위한 생명의 샘이 되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받은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기념하는 공동체를 지켜 주시고, 아버지와 함께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자연히 과거의 구원 행위에 대한 감사 가득한 깨달음과 하느님의 충실에 대한 기쁜 응답으로 우리의 충실을 요구한다.
전례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의 기원,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는 역사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하루살이와 같은 한 순간의 희생물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 현재를 과거와 미래에 연결하는 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있는 그를 통해서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결실을 내놓는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하나의 책임 있는 거룩한 존재가 된다.
그리스도를 만남이 과거를 현재가 되게 한다. 왜냐하면 살아 있고 결실을 내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자신의 현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지금 여기에”(Hic et Nunc)
그리스도께서는 생애의 순간순간을 당신의 ‘때’(kairos)를 바라보며 사셨다. 이것이 당신의 길을 굳세게 가시게 하고, 동시에 당신의 발걸음마다 현재에 대한 평형과 변함없는 항구함을 지키게 했다. 전례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구원 행위 안에 우리를 끌어들이는 그리스도의 현존 체험이다.
전례 안에서 우리는 생명이신 분의 힘있는 현존을 거행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협력자로 삼으시기 위해 세상의 역사, 구원 역사의 주님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 우리의 전례 거행이 오시는 분의 이러한 현존을 믿는 신앙의 합당한 표현이라면, “지금 여기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간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전생애가 목표로 했고, 모든 것의 성취를 이룬 ‘은총의 때’(kairos)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영광의 위대한 시간에 재림(parusia : 결정적 완성)을 앞당기셨듯이, 전례에 의해 양성된 그리스도인은 구원 역사의 전체성으로부터 분출하는 힘에 의해 매순간을 결정적 순간으로 살아간다. 전례 거행 안에 각각 결정적 순간이 임재한다. 구원 역사의 주님은 우리를 위한 길이요 생명이며 빛과 진리의 충만이시다. 그 주님께서 전례 안에 현존하신다. 그러기에 “지금”은 하루살이의 순간이 아니라 순환하는 역사의 한 지점이다.
전례를 거행하는 그리스도인은 역사에 의해 조건 지어진 삶만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나간 역사를 하느님의 역사로 알아들어 ‘자유’의 역사로 바꾸어 가고, “지금 여기에”를 자신의 자유를 위한 선물과 수행해야 할 과제로 경험한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역사를 이끄신 주님의 현존과 오심을 전례 안에서 거행할 때, 자유롭게 하신 주님께 자신을 개방한다.
3. 완성을 향한 발걸음
전례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러 오시고 우리를 구원의 신비 안으로 이끌어 들이시는 주님께서는 이미 재림(완성)의 시기를 사신다. 전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 안에 이미 완성이 존재한다.
전례 안에 사는 사람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을 향하여 방향 지운다. 그러므로 아직은 부족한 층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한다.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끝을 향하여 걷는 사람은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시며 말씀하신 기쁨과 활기를 충만히 느낀다(요한 15,4-12 참조).
전례의 삶을 통해 양성된 그리스도인에게, 윤리 신학은 더 이상 특별히 제한적 규범이라는 의미에서의 법규적 교의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 덕행은 역사의 세 차원, 즉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하고, 구세사의 충만에 기초하고 있는 매우 단단한 성서적이고 종말론적인 덕행이다. 이러한 덕행은 영과 분별의 능력도 갖추게 한다.
4. 시대의 영과 징표의 분별
우리를 전례에 효과적으로 참여케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전례 안에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의 존재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이끄신다. 그래서 살아 있는 전례의 거행과 시대의 징표에 대한 주의는 같은 것임이 확인된다.
우리의 기억이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감사의 정으로 돌아서면 돌아설수록, 삶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마지막 완성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은총의 부르심에 응답의 자세를 갖추면 갖출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이웃과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하느님께 받은 능력과 선물을 올바로 사용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게 된다.
5. 평정, 기쁨과 평화의 확산
성령께서는 전례 안에서 우리를 진복(眞福)의 산으로 이끄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골고타를 오를 힘과 용기를 주신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을 찬미하게 하고, 이러한 전례적 찬미는 우리 안에 고요한 평정을 낳는다. 이 고요는 우리가 은총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은총은 우리를 폐쇄적이지 않게 하고, 우리의 삶을 전례적 찬미로 계속되게 한다.
전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건너감’을 실현하도록 가르치고, 그리스도 백성을 하느님 나라를 위해 온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도록 가르쳐 준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헌신은 결코 강제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맘몬’으로부터의 자유이고 ‘카이사르의 것’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주님은 이미 우리의 길이요, 고향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와 계신다. 이것을 깨달음이 우리에게 전례를 축제로 거행하게 하며, 고요한 미소로 주님을 기다리게 한다. 그는 이제 역사적 구원의 사명에 온전히 투신할 수 있게 된다. 완전한 전례의 삶과 그에 대한 응답이 전적인 투신과 뿌리내림으로 나타난다.
[경향잡지, 1994년 8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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