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사도는 왜 열두 분이었습니까? 열둘이라는 숫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열둘이라는 사도들의 수는 야곱의 열두 아들과 연결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로 구성되는 이스라엘의 12지파는 그들 자신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계약의 상속자라는 의식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열둘이라는 숫자의 성서적인 의미는 완전함과 완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와 같이 사도들은 배반자 유다의 자리에 마티아를 선출하여 열둘이라는 숫자를 채우는 것(사도행전 1, 15~26)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고 다스리는 권한을 주시면서 교회를 새 이스라엘로 성격을 규명합니다. 이렇게 사도들은 열둘이라는 숫자에 의해서도 새 이스라엘로서의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 이스라엘로서의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위임받은 만민을 위한 구원 공동체로서의 직분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 중심이 열두 사도단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일에는 왜 삼종기도를 서서 하는가? 1. 주일에는 삼종기도를 서서 바치게 됩니다.
우리는 일반 평일에는 무릎을 꿇어서 삼종기도(三鐘祈禱)를 바칩니다. 하지만 주일이 시작되는 토요일 저녁부터는 서서 삼종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주 중 다른 요일에는 비록 대축일, 예컨대 성탄 대축일일지라도 늘 무릎을 꿇고 삼종기도를 바칩니다. 2. 주일 삼종기도에서 일어서는 동작의 뜻:
* 매 주일(主日)은 "부활의 날"인 작은 부활축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넘치는 기쁨으로 기도 중에 무릎을 꿇어 움츠러든 자세가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힘차게 일어선 자세를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만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새로운 부활 생명으로 탄생한 우리 부활의 기쁨 때문에도 서서 기도합니다.
* 그래서 일어서는 동작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갖는 자유를,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자유인임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 그리스도교 초기 때는 주일과 부활 시기에는 무릎을 꿇지 말고 서서 예배를 보도록 의무화하기도 했습니다. (1차 니체아 공의회, 325년) - 미사성제는 모두 부활의 재현이요, 미사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3. 일어서는 동작의 다양한 의미:
* 희망과 믿음으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 *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존경심을 드러내는 자세(복음 때) * 성서적으로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이의 기본자세(그래서 미사 중 신자들은 사제와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 일어서게 됩니다) 4. 무릎을 꿇는 것의 의미
원래는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고 용서를 청하거나 자비를 구하는 자세인데, 점차 성스러움에 대한 깊은 존경과 경외심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변화(聖變化) 중에는 여건만 되면 무릎을 꿇도록 하고 있습니다. 삼종기도 ◎ 예수 강생의 신비 기념 위한 기도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알려준 예수의 잉태와 강생의 신비를 기념하기 위해 하루에 세번 바치는 기도. '삼종'이란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정오, 저녁 6시에 종을 세 번 치는 것을 뜻한다. 종은 매번 세 번씩 치고 조금 여유를 둔 후 다시 계속 친다. 왜냐하면 긴 기도문을 바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종을 세 번 치는 이유는 기도문 안에 구원의 신비가 셋으로 나눠져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소음공해에 따른 법적 규제로 종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삼종기도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11세기 팔레스티나 성지를 되찾기 위해 십자군 원정이 일어났을 때,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이들의 승리를 위해 종을 세 번 치면 기도를 바치라고 한데서 비롯한 것 같다.
1318년 교황 요한 22세는 저녁에 종이 울리면 평화를 위해 성모송을 세 번 바치도록 했고, 교회는 14-15세기에 이를 연장하여 아침과 낮에도 바치게 했다. 처음에는 금요일에 한해서 바쳤으나 16세기 이후 매일 세 번씩 바치게 됐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로 시작하는 평상시의 삼종기도는 보통 무릎을 꿇고 바치나 주일에는 기쁨의 표시로 일어서서 바친다.
그러나 부활대축일부터 성령강림 전까지는 부활 신비를 담고 있는 '부활삼종기도'를 바치는데 기쁨의 표시로 매번 일어서서 한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로 시작하는 이 기도는 성 보나벤뚜라(1221-1274)가 지었다고 한다. 특전미사 ◎ 휴식 필요한 사람 위한 것, 남용 안돼 신자들은 주일과 그 밖의 의무축일에 미사에 참례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지키기 힘든 신자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특전미사다. 즉, 주일과 의무축일 전날 저녁미사에 참례해 의무를 대신하는 것이다. 특전미사 시행 배경은 다음과 같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하루를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로 계산했고, 교회 전례도 주일과 축일을 전날 저녁기도부터 시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교회는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례기회 확대를 위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이를 허락한 것이다.
한국 주교회의는 1969년 특전미사 시행을 교황청에 신청, 1970년 시행권한을 부여받고 세부지침을 각 교구장의 재량에 맡겼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교구의 여건에 따라 시행일시와 세부적 실천방안에 차이가 생겼다. 현재 한국교회는 주일과 의무축일 전날 오후 4시부터 특전미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자들은 주일 의무를 채울 수 없을 경우 특전미사에 참례하던가, 공소예절을 하면 된다. 이것도 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묵주기도, 성서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 특전미사의 본래 목적은 주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근로자들을 위한 것이나 일반적으로 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주일미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따라서 특전미사가 그 본래정신에서 벗어나 단지 주일에 휴식을 취하고 놀러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남용돼서는 안 된다. 십자성호
우리는 전례나 개인기도의 시작과 끝뿐만 아니라 하루 일과나 가가종 모임의 시작과 끝에 자주 십자성호를 긋는다. 심지어 열심한 신자들은 음료수를 마실 때조차 꼭 십자성호를 긋고 마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생활중에 아주 작은 행위 하나 하나에 십자성호를 긋는 이유는 테르툴리아노 교부가 "어떤 동작을 할 때마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때... 일상생활의 모든 동작마다 우리는 십자표를 긋는다"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일상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 비록 작고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느님과 연관시키고, 하느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십자성호는 비록 간단한 동작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십자가는 원래 고대 중동 지방의 사형 도구였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희생되신 이후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교회는 이미 초세기부터 여러 형태의 십자 표시를 전례나 사적인 기도 등에 애용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마와 가슴 및 어깨에 하는 전형적인 십자성호는 원래 5세기경부터 나타났지만, 전례나 개인 등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3세기경부터다. 특히 이 동작은 중세 초기에 성삼 기도문과 겹쳐지면서 더욱 일반화되었다. 이마와 가슴 및 어깨에 십자성호를 긋는 뜻은 이들 부위가 인간의 몸과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마나 입술 및 가슴에 십자표시를 긋는 것은 '작은 십자성호'라고 하는데, 이미 중세기 이전부터 애용되었으나, 전례 안에 들어온 것은 12세기 이후부터이다. 현재는 미사 때 복음 봉독직전에만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복음 말씀을 머리로 깨닫고 입으로 선포하며 마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표를 그리는 형태는 4~5세기부터 안수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축성, 축복, 사죄, 구마 등을 위한 것이다. 현행 예식에서는 미사 때의 축성, 참회 예식의 사죄, 각종 예식 끝의 파견 축복 등에서 볼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십자 표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가장 짤막하고 명료한 신앙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십자 표시를 통해 인간에게 빛과 구원을 이룩하신 그리스도의 인성, 특히 그분의 수난과 부활을 믿고 고백하여 생활안에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성모칠고(聖母七苦)란 무엇입니까?
성모칠고(聖母七苦)는 성모 마리아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았던 일곱 가지 슬픔과 고통을 말하는데 시메온의 예언, 이집트 피난, 예수 잃어버림, 십자가 진 예수 만남,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성시(聖屍)를 안을 때와 묻을 때의 처절한 고통 등을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구세사 적인 수난과 죽음에서 절정을 이루며 성모칠고에 대한 신심은 성모가 예수의 십자가 아래 서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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