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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6월 23일 성녀 에텔드레다(Etheldreda) / 엘리(Ely)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15.

축일 6월 23일 성녀 에텔드레다(Etheldreda)

 St. Etheldreda or Audrey Abbess

Sant" Eteldreda di Edy Badessa

St. Etheldreda, OSB Widow (RM)

신분: 왕비, 수녀원장

활동지역: 엘리(Ely)

활동연도: +679년

같은이름: 에딜트루데, 에딜트루디스, 에뗄드레다, 오드리

 

 

엘리의 성녀 에텔드레다(Etheldreda)

 

성녀 에텔드레다는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의 국왕 안나(Anna)의 딸로서 잉글랜드 남동부 서퍽(Suffolk) 연안의 엑스닝(Exning)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에 그리비이의 왕자 톤버트(Tonbert)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이 결혼은 남편이 불과 3년 만에 죽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동정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엘리 섬에서 5년을 살다가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오스위(Oswi) 왕의 아들인 에그프리두스(Egfridus)와 결혼하였다.

 

결혼생활 12년 후에 남편이 그녀에게 남편의 권리를 요구하였을 때, 그녀는 자신은 이미 하느님께 봉헌한 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의 동의를 얻어서 그녀는 엘리 섬으로 돌아갔으며, 672년경에 수도원을 세운 뒤 원장으로 지내면서 일생을 봉헌된 생활로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에딜트루데(Ediltrudis) 또는 오드리(Audrey)로도 불린다.

 


 

 

 

성녀 에텔드레다(오드리)

 

그녀는 이스트 앵글의 국왕 안나의 딸로서, 잉글랜드 슈포트의 엑스닝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로 그리비이의 왕자 콘버트에게 시집갔으나, 이 결혼은 남편이 불과 3년 만에 죽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 어렸으므로 동정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엘리 섬에서 5년을 살다가, 노스움브리아의 오스위 왕의 아들인 에그프리드와 결혼하였다. 결혼생활 12년 후에, 남편이 그녀에게 남편의 권리를 요구하였을 때, 그녀는 자신을 이미 하느님께 봉헌한 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의 동의를 얻어서 그녀는 엘리 섬에 돌아갔으며, 672년경에 수도원을 세운 뒤 원장으로 지내면서 일생을 봉헌된 생활로 살았다고 한다.

 

(성바오로수도회 홈에서)

 


 

 

 

자기 절제

 

성녀 오드리로 더 잘 알려진 에텔드레다는 결혼을 두 번이나 하고도 동정을 간직했다.  3년 간 계속된 첫 번째 결혼에서는 남편과 친남매처럼 살았고 두 번째 결혼은 가족의 강요에 의해 북움브리아국의 어린 왕 에그프리드와 하였다. 12년이 지난 후 에그프리드는 좀더 많은 것을 원했으나 에텔드레다는 수녀가 되기를 원하였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원하는 대로 하도록 허락을 받아서 에텔드레다는 수녀가 되었고 에그프리드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에텔드레다와 두 남편은 정말 특이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우리 교회사에서도 루갈다 동정 부부가 있었던 것처럼 과거에는 자기 절제를 흔히 영적 성장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자기가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고의적으로 배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가끔 참아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했을 때 휴일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절제를 영적 성장이나 공덕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 자기 절제는 영원히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절제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다 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다렸기에 기쁨이 더 컸던 일을 체험한 적은 없는가? 적당한 자기 절제로 스스로를 훈련하겠다.

 

(까리따스수녀회 홈에서)

 


 

 

   

 


 

성화속의 성녀 에텔드레다(Etheldre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