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6월 27일 성 치릴로(Cyril) /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19.

축일 6월 27일 성 치릴로(Cyril)

St. Cyril of Alexandria

St. Cyril of Alexandria B, Doctor (RM)

San Cirillo d"Alessandria Vescovo e dottore della Chiesa

신분: 총대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활동연도: 380-444년

같은이름: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Cyrillus)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태생인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그 도시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의 조카였다. 성 키릴루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고전과 신학 교육을 받았고, 그의 아저씨에 의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403년 총대주교를 수행하여 콘스탄티노플로 갔으며, 그곳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isostomus, 9월 13일)를 단죄한 퀘르키아(Quercia) 주교회의에 참석하였으며, 417년까지는 테오필루스의 노선에 따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를 반대하였다. 412년 10월 15일 테오필루스가 사망하자 성 키릴루스는 사흘 후에 그의 아저씨를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성 키릴루스의 지지자와 그의 라이벌인 티모테우스(Timotheus)의 지지자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 그는 큰 상처를 입고 출발하였다. 그런데 성 키릴루스는 자신이 축출하였던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이단을 상대로 일련의 공격을 다시금 재개하였다. 그 결과 그가 그 도시에서 몰아냈던 유대인들과 총독 오레스테스는 그의 이같은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430년 성 키릴루스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지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천주의 모친일 수 없다고 가르쳤으며, 따라서 마리아에게 '천주의 모친'(테오토코스, Theotokos)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성 키릴루스는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Coelestinus I, 4월 6일)를 설득하여 430년 8월에 로마(Roma)에서 주교회의를 개최하여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같은 해 11월에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주교회의를 열어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단죄하여 교회 일치를 도모하였다.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 교황은 성 키릴루스로 하여금 네스토리우스를 축출하도록 지시하였고, 성 키릴루스는 431년 제3차 에페수스(Ephesus) 공의회에서 교황의 특사 자격으로 의장직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때 200명 이상의 주교들이 대거 참여하여 큰 성황을 이루었다. 이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총대주교 요한과 42명의 추종자들이 대거 몰려오기 전에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추종자 세력을 단죄하여 분쇄하였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 일파는 그들 나름대로 회의를 소집하여 성 키릴루스를 축출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래서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성 키릴루스와 네스토리우스를 체포하였으나, 교황대사가 와서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공의회의 결정이 올바르다고 전하자 성 키릴루스는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2년 후 안티오키아 주교들을 대표하는 요한 총대주교와 성 키릴루스는 위의 단죄를 인정하는 동의안을 결의하는데 도달하였고, 네스토리우스는 강제로 유배되었다.

 

그 후 성 키릴루스는 삼위일체와 강생에 관한 교리 확립과 신학 논문 저술에 여생을 바쳤고, 그리스도교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던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와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배격하는 일을 하여 교회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알렉산드리아가 낳은 가장 유명한 신학자이다. 그의 저서는 정확한 사고와 명확한 전개 및 그 합당한 근거 제시로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성서에 관한 그의 주석서 가운데에는 요한, 루카 그리고 모세오경이 있으며, 수많은 교의신학 논문을 비롯하여 배교자 율리아누스(Julianus) 황제에 대한 반박문, 편지 그리고 강론들이 전해온다. 그리스 교부의 한 명인 성 키릴루스는 1882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동방 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은 6월 9일에 기념한다.

 


 

 

 

성 치릴로(Cyril)

 

313년 콘스탄티노 대제가 로마 제국 내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허가한 후부터 교회는 날로 번성하여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한편 여러 이단자들이 나왔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참된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진력한 교회 학자가 여러 명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성 치릴로 총주교이다. 치릴로는 북부 아프리카의 대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370년에 태어나 청년 시대로부터 성직자가 되려고 결심했다. 그래서 우선 고향에서 철학과 신학을 연구한 후 수양하기 위해 잠시 이집트의 수사들과 같이 생활하고, 다시 예루살렘의 주교 요한의 슬하에는 그의 교육을 받았다.

 

412년 알렉산드리아의 총주교 테오필로가 서거하자 치릴로는 그 후임으로 선발되어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리고 후에 노바투스 이단이 일어났으므로 이를 물리치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그 교회의 폐쇄를 명했다. 그는 그로 말미암아 이단자들의 원망을 들어도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그만큼 교회를 옹호하는데 그의 결의는 강했던 것이다.

 

그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에 대한 태도도 이와 똑같은 이유에서 아직 데오필로 총주교가 살아계시는 동안 치릴로는 그와 함께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종교 회의에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그 석상 토론이 있은 후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설이 이단이라고 할 때 그도 거기에 찬성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에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단자가 아니란 것이 교회에서 인정되고 사후 성인품에 오르게 된 후에도 치릴로의 그에 대한 의혹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아 자기 교회의 성인 명부에는 그의 이름을 실리지 않고 있었다. 이것도 그의 열렬한 호교 정신의 발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차차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이단자가 아니란 것을 확인하자 치릴로는 오랫동안 그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을 후회하고 기회 있는 대로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힘 있는 데까지 노력했다.

 

이와 같이 참된 그리스도교-가톨릭교의 진리를 열렬히 사랑하던 그는 이단이나 이교의 그릇됨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서적을 저술하며 종종 설교도 하는 동시에 성서의 해석에 있어서도 단연 권위자로 존경을 받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교회사(敎會史)에 그의 이름을 영구히 보존케 하는 그의 최대의 공적은 무엇보다도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을 물리친 사실이다.

 

네스토리우스는 429년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로 있었던 자로서 그 후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의 일치에 대하여 이설을 주장하며, 또 성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고 주장하고 강론으로나 저서로 이단을 선전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신자들은 이런 이단설을 듣고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치릴로는 이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중대사라고 생각하고 분연히 일어나서 그 해 부활축일의 강론 때 네스토리우스의 설을 반박하고 아울러 이집트의 수사들에게도 서간을 보내어 엄중히 경고했다. 그렇지만 상대자가 총주교의 중직에 있다는 것을 고려한 나머지 그의 이름은 특별히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간 네스토리우스 자신에 대해서도 그는 두 번이나 서한을 보내어 그의 그릇된 설을 취소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답서에는 악의가 충만한 모역적인 언사로 가득 차 있었다.

 

할 수 없이 치릴로는 이 사실을 로마 교황 첼레스티노에게 보고했다. 교황은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을 파문할 것과 또한 이에 관한 문제의 해결을 그에게 일임한다는 뜻을 써 보냈다. 이것을 들은 네스토리우스는 분개하여 황제에게 고소했으므로 황제는 이를 조정할 목적으로 주교 회의를 소집했다.

 

이것은 교회사상 유명한 441년의 에페소 공의회인데, 치릴로는 이 석상에 교황 대리로서 참석했던 것이다. 회의 결과 대다수의 주교가 네스토리우스의 설이 그릇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후 그 이단에 주교가 네스토리우스의 설이 그릇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후 그 이단에 가담하는 자는 파문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결의하고, 또한 성 마리아는 참된 의미로 '하느님의 모친(테오토코스)'이라는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로서 황제의 신임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을 기회로 치릴로를 허위 고소했으므로 황제는 이를 곧이듣고 2개월간이나 그를 감옥에 가두고 여러모로 고통을 주었고 간신히 여동생 부르게리아 공주의 알선으로 그를 석방했지만, 치릴로는 중한 형벌과 심중한 타격으로 신심이 모두 허약해져 자신의 주교좌인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다. 네스토리우스의 설을 이단이라고 결정 선언한 후에도 그를 신봉하는 자는 좀체 끊이지 않았다. 치릴로는 미궁에서 헤매는 양들을 돌아서게 하기위해 서한으로, 강론으로 모든 힘을 경주하면서 그들을 깨우쳤다.

 

성 치릴로가 '성모 마리아의 신학 박사'라고 칭함을 받은 것은 물론 주로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에 대한 신학상의 공로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성모께 관한 신앙개조를 명백히 결정하는 사명을 하느님께 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32년간 총주교직에 있다가 444년에 서거했다. 치릴로는 교황 레오 13세에게 교회 박사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고, 또한 교회사상 동 로마의 5인의 교부 중의 한 사람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대구대교구 홈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

  

370년에 태어났다.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된 후 412년 자기 큰아버지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 네스토리우스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항하여 굳건히 투쟁했고 에페소 공의회를 주관했다. 가톨릭 신앙을 해설하고 옹호하는 깊은 교리가 담긴 많은 저서를 남겼다. 444년에 세상을 떠났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의 편지에서

(Epist. 1: PG 77,14-18. 27-30)

 

동정 마리아는 천주의 모친이시다

 

어떤 이들이 거룩한 동정녀께서 과연 천주의 모친이라 불리울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하는 것을 볼 때 나는 매우 놀랐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라면 왜 그분을 낳아 주신 거룩한 동정녀를 천주의 모친이라 할 수 없겠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이 이 어휘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전수해 준 신앙 교리입니다. 우리가 공경하는 교부 아타나시오도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 제 3장에서 거룩한 동정녀를 몇 번 천주의 모친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여기서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우리가 몇 번 지적한 것과 같이 성서에 나타난 목적과 특징은 구세주 그리스도에 관해 두 가지를 주장하고 있는 점입니다.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말씀, 성부의 광휘와 지혜로서 하느님 자체이시고 또 항상 하느님으로 계셨다고 말하고 있으며, 또 동시에 그리스도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천주의 모친'이신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타나시오는 또 몇 가지를 이야기한 다음 이렇게 덧붙입니다. "온갖 죄에서 벗어난 거룩한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머니의 모태에 있을 때부터 거룩하게 되었고, 요한은 태어나기 전에 '천주의 모친'이신 마리아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 뛰놀았습니다." 아타나시오는 뛰어난 분이고 우리가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분입니다. 그는 성서와 일치하지 않는 교리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시인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에서 사람이 되셨다고, 즉 말씀께서 이성적 영혼을 지닌 육신과 결합하셨다고 말해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 중 한 사람을 택하여 한 여인의 몸에서 육신을 이루시고 그 여인의 살과 피에 참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분께서는 하느님만이 아니시고, 이 결합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두 가지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이시고 동시에 사람이신 오직 유일한 분이시며, 또 실제로 한 분뿐이신 참된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신이 되신 사람이 아니시고, 우리 구원을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참된 하느님이십니다. 바오로는 이를 증언합니다.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

 


 

 

 

 


 

성화속의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Cyrillus) 주교

[금주의 성인]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이달의 성인]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370-444)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