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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103위 성인들

성녀 김업이 막달레나(金業伊 Magdalen)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27.

성녀 김업이 막달레나(金業伊 Magdalen)

축일 9월 20일

 

성녀 김업이 막달레나(金業伊 Magdalena, 탁희성 비오 작)

 

 

신      분: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74-1839년

같은이름: 김 막달레나, 김막달레나, 마들렌, 막딸레나

 

성녀 김업이 막달레나(Magdalena)는 어느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부터 동정을 지키려고 하였으나 부모들의 강압에 못 이겨 어느 교우에게 출가하였다. 그러나 중년에 들어서 남편과 자녀를 잃고, 서울 근교 애고개로 이사하여 망건을 만들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유지하며 어렵게 살았다. 시어머니의 성격이 괴팍하고 또 질시와 냉대를 받았지만, 그녀는 주님을 생각하며 희생과 극기로써 이를 이겨냈다. 시어머니가 죽은 후부터 그녀는 더욱 열심한 생활을 했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으며, 위독한 외교인 아이들에게 대세를 주고, 교우 자녀들에게도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1836년 10월 어느 날 김 막달레나는 관헌에게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그 후 형조의 옥에서 3년을 지냈는데, 갖은 형벌을 받았어도 육순이 넘는 그녀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마침내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66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김업이(金業伊) 막달레나(1774-1839)

 

김업이 막달레나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며 본래 수정(守貞)을 원했었는데, 혼기에 이르러 어머니의 권유로 교우 청년과 결혼했다. 중년이 되어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노모와 함께 애고개(지금의 아현동)에서 망건을 만들어 팔며 살았다. 항상 노모에게 순종하는 좋은 표양과 밝은 교리지식으로 외교인들에게 전교하며 순교할 결심으로 수계하던 김업이 막달레나는 1836년 10월 김아기 아가타, 한아기 바르바라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김업이 막달레나는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참아내고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집행이 유예되어 3년을 옥살이한 끝에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자신의 소원대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66세였다.

 

성녀 김아기 아가타, 성녀 한아기 바르바라와 함께 체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