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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103위 성인들

성녀 이소사 아가타(李召史 Agatha)

by 파스칼바이런 2012. 10. 2.

성녀 이소사 아가타(李召史 Agatha)

축일 9월 20일

 

 

 

신      분: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84-1839년

같은이름: 아가다, 아가따, 이 아가다, 이 아가타, 이아가다, 이아가타, 이조이

 

성녀 이소사 아가타는 경기도 이천의 구월에서 태어났고, 1838년에 순교한 이호영 베드로(Petrus)의 누님이다. 그녀는 17세의 나이로 어느 외교인에게 출가하여 3년을 살다가 남편과 사별했는데, 현석문 카롤루스는 기해일기에서 아가타의 생활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얼마 아니 되는 가산마저 없이 한 후 늙은 시어머니와 어린 시동생과 함께 근근이 살았는데, 그때에 그녀가 당한 고난은 필설로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은 곤궁 중에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언제나 화평한 기색과 기쁜 웃음이 떠나지 아니 하였으니. 그녀의 착하고 아름다운 언행을 모두 기록하기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1835년 2월 어느 날, 포졸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이 아가타는 동생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어서 그녀의 올케마저 잡아가려 하자, "이 사람은 죄가 없으니 내버려두시오" 하고 말하여 올케만은 어린애들과 노모를 돌보게 하였다고 한다. 판관 앞에 불려나간 이 아가타는 모진 매를 맞고 주리를 틀리었으나, 조금도 겁내는 빛을 보이지 않았고 또한 그녀의 용기는 조금도 꺾이지 아니하였다. 이리하여 3년 남짓 오랜 옥고를 치른 끝에 그녀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39년 5월 24일, 그녀는 여덟 명의 다른 신자들과 함께 달구지에 태워져 포청을 떠나 형장으로 향했다. 아가타는 우마차 위에서도 다른 때와 같이 온화한 기색으로 눈을 내리뜨고 있었고, 우마차에서 내리면서 십자성호를 긋고 조용히 칼을 받았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56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수원교구 성지에서 만나는 103위 성인]

단내성가정성지 이소사·이호영 남매

4년간 모진 고문 이겨내고 순교

 

 

한국교회 103위 성인 중에는 가족 순교자가 여럿 있다. 경기도 이천 출신 이소사(아가타, 1784~1839)·이호영(베드로, 1803~1838) 남매는 4년간의 혹독한 옥고를 서로 격려하고 이겨내며 마침내는 하느님 품에 안긴 성인이다.

 

이소사 성인은 17살 때 결혼했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 동생과 함께 입교했다. 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과 과 함께 서울로 이사왔다. 서울로 온 남매는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그로 인해 이호영 성인은 유방제(劉方濟) 신부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해의 칼날은 남매의 지고지순한 하느님 사랑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남매는 1835년 2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체포됐고 이후 포청과 형조에서 차마 견디기 어려운 형벌과 고문을 받아야 했다.

 

이소사 성인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은 이호영 성인은 형조에서 '사학죄인'(邪學罪人)이라는 문구에 대해 수결(手決, 오늘날의 서명, 사인)을 강요하자 ‘천주교는 사학이 아니라 거룩하고 참된 도라 수결할 수 없다고 버티며 신앙을 증거 했다.

  

사형집행이 연기된 후에도 형벌은 계속됐지만 성인 남매는 비명 한 마디 지르지 않고 형벌을 참아내며 함께 한 날 한 시에 순교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했다.

 

결국 이호영 성인은 1838년 11월 25일 4년간의 옥살이 끝에 얻은 병으로 옥에서 순교했다. 이소사 성인도 동생이 순교한 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신자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5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이소사·이호영 성인 남매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

 

 

단내성가정성지는

 

단내성지는 한국에 존재하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교우촌이며 김대건 신부의 사목활동이기도 하다. 아울러 한국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이천에서 태어났거나 체포돼 순교한 5명의 성인을 기념하는 성지이다.

 

성지가 가정성화를 위해 순례하는 성가정성지로 명명된 것은 성지에서 기념하는 5명 성인 중 이문우 성인을 제외하면 모두 가족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정은(바오로)와 정베드로 순교자는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 김대건 신부는 부자가 함께 순교 성인이며, 이호영과 이소사는 남매, 조증이와 남이관 성인은 부부다.

 

가족 간 대화가 끊기고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에 처한 오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으려 노력했던 성인들의 자취를 좇아 가족과 함께 손잡고 단내성지를 찾는 것도 좋을 듯. 성지에는 순교자 정은(바오로) 묘소와 이천 출신 5위 성인순교비, 성당과 영성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 순례문의 031-633-9531 사무실, www.dannae.or.kr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09년 6월 21일, 이승환 기자]

 


 

 

성녀 이소사 아가타(李召史 Agatha, 탁희성 비오 작)

 

성녀 이소사 아가타(1784-1839)

 

이 아가타는 경기도 이천(利川) 출신으로 17세 때 결혼했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 동생 이호영과 함께 입교하였다. 아버지가 대세(代洗)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였다. 1835년 2월(음력 정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동생 이호영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여인으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형벌과 고문을 참아냈고 형조로 이송되어 동생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옥살이를 더 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옥중 생활 속에서도 동생과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내와 극기로써 생활하였다. 동생을 먼저 순교의 영광을 입게 하고 자신은 동생이 옥사한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5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 성 이호영 베드로는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