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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전 례 음 악

[가톨릭 문화산책] 성음악 (1) 성음악의 모태, 시편

by 파스칼바이런 2013. 3. 6.

[가톨릭 문화산책] 성음악 (1) 성음악의 모태, 시편

전례, 기도 중 부르는 시편, 주님 향한 찬미 감사 탄원의 노래

- 백남용 신부 -

 

교회의 전통적 설명에 따르면, 종교(Religio)란 '다시(re) 묶는다(ligare)'에서 유래한다. 그 말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떠나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하고자 함이 교회가 추구하는 목적임은 확실하다.

 

그래서 영성신학자들도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 혹은 정담'이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먼저 이야기를 걸어줘야 가능하다. 우리가 그 말씀에 대답을 하면 서로의 관계, 즉 친교가 생기고 유지된다. 하느님께서는 사실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었는데, 그 말씀을 기록해 '성경'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하느님 말씀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갖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도 있고, 또는 고맙다는 표현을 할 수도 있다. 혹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 수도 있고, 무언가 도와달라고 청할 수도 있다. 이 찬미와 감사, 속죄, 청원이 기도의 4가지 요소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응답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성경 가운데서 드물게 인간의 대답을 기록해 둔 부분들이 있다. 시편집이 대표적인 책이다.

 

흔히 이스라엘 민족의 두 번째 왕이자 가장 훌륭했다고 전해지는 다윗왕이 썼다고 하는 시편집은 노랫말집이다. 이 시편은 히브리어로 '터힐림'이라 하는데, '찬양가들'이라는 뜻이고, 그리스어로는 '프살모스', 즉 '하프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둘을 종합하면 찬양과 노래라는 뜻이다.

 

기도의 네 요소처럼 시편 150편도 크게 분류하면 찬양시편과 감사시편, 탄원시편, 일반시편으로 나뉜다.

 

이 시편집 외에도 솔로몬이 지었다는 아가서와 예레미야ㆍ애가서, 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탈출 15,1-18), 사무엘기 상권에 나오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노래(1사무 2,1-10), 다니엘서에 나오는 세 젊은이의 노래(다니 3,52-90) 등이 더 있다.

 

노랫말은 이렇게 전해오지만 어떤 음악적 옷을 입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시편에 자주 성가대와 악장, 악기 등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악보라는 기보법이 발달하지 않아서 선율이나 리듬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노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늘 부르던 노래다. 예루살렘으로 도보순례를 떠나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이미 우리 발이 서 있구나"(시편 122,1-2)하고 노래한다. 죄를 짓고는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1)하고 노래한다.

 

바빌론 유배생활을 하면서는 "바빌론 강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시편 137,1)하고 노래한다. 특히 임금 즉위식이나 성전 예식 중에 백성들은 성가대와 함께 온갖 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했다. 파스카 축제의 정점인 파스카 만찬예식 때에도 식구들이 모여 음식을 먹는 중간 중간에 시편 113장부터 118장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138장까지도 노래로 부르곤 했다.

 

당연히 예수님도, 제자들도 시편을 노래했다. 그러나 시편 자체를 성음악이라 부르기엔 아직 일렀다. 성음악이란 교회(Eccle sia, 敎會)의 전례용 음악을 뜻하며, 교회는 구약시대나 예수님 시대를 말하기보다는 성령강림 사건을 기점으로 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서 구약 전통을 따라 전례에서 시편을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시편은 비로소 성음악의 중심을 이루기 시작한다. 테르툴리아노(160~225) 교부의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를 묘사한 「초대 교회 법령집(Constitu tiones Apostolorum)」에 이미 전례 중에 시편을 노래한다는 표현이 나타난다. 성 암브로시오나 성 아우구스티노 등 교부들의 기록에도 역시 전례 중 시편 노래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시편을 노래하는 구체적 방법도 발달했다. 대응창법(Anti phona)과 화답창법(Responsorium)이 그것이다. 대응창법은 신자들이 두 편으로 갈라져 시편을 한 절씩 교대로 주고받는 창법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연도를 바칠 때 시편을 노래하는 방법과 같다. 화답창법은 현재 미사 화답송을 노래하는 방법과 같다.

 

선창자가 시편을 메기면, 전 교중은 계속 같은 후렴으로 응답하는 방식이다. 미사전례 형식이 갖춰지면서 3대 행렬노래인 입당송과 봉헌송, 영성체송 등은 대응창법으로 시편을 불렀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하는 화답송, 복음 전 환호인 알렐루야는 화답창법으로 불렀다. 그러니까 미사전례 중에 부르는 노래는 거의가 시편노래들인 셈이다.

 

초대교회 미사전례뿐 아니라 시간전례(성무일도)에서도 시편은 그 중심을 이뤘다. 원래 유다교나 기원전 1세기께 사해 북서안 쿰란 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한 유다교의 한 분파인 쿰란공동체 전통에서는 하루 세 번씩 기도하던 관습이 있었다. 이를 본떠서 초세기 교회 신자들은 저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 기도를 드렸다. 이것이 차차 공동기도로 발전해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로 발전했다.

 

또 사도시대에는 날마다 오전 9시(사도 2,15), 정오(사도 10,9), 오후 3시(사도 3,1)에 기도하는 모습도 발견된다. 이같은 시간기도는 당연히 시편기도로 꾸며졌다. 성 안토니오(251~356)에 의해 수도원 체제가 생겨나고, 성 베네딕토(480~547)에 의해 수도원 규칙이 확립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수도원들이 생겨났다. 이 수도생활에서는 시간전례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시간전례의 주 내용은 시편기도였고, 이 전통에 따라 지금도 시간전례에서 시편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미사전례서에서는 약간 변화가 있지만, 그래도 신자들이 같이 불러야 하는 부분의 노래는 시편이 주를 이룬다. 또 요즘은 시간전례를 매일 하는 신자들도 꽤 많다. 우리는 알고 하건, 모르고 하건 간에 시편 노래에 젖어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시편은 그리스도교 성음악의 모태요 영원한 원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윗왕 이야기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 보르게세 경당 다윗상.

  

어느 날 밤 다윗왕은 자기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가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범했다. 한 번 실수였지만, 그 여인은 아기를 가졌다. 다윗은 겁이 나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야를 불러 아내와 잠자리에 들 기회를 여러 번 줬지만 계속 실패했다. 결국 다윗은 그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고, 과부가 된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제 모든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언자 나탄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꺼냈다. "양과 소를 많이 가진 어떤 부자가 있습니다. 그 옆에는 암양 한 마리를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암양을 자식들과 같이 데리고 자고 같이 먹고 하였습니다. 마치 딸 같았습니다. 하루는 그 부자에게 길손이 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 양이나 소를 잡고 싶지 않아서 가난한 사람이 애지중지하는 그 암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왕은 그런 나쁜 놈을 당장 잡아들이라 소리쳤다. 그러자 나탄이 말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왕은 즉시 용상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재를 뒤집어쓰고 참회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유명한 시편 51장이다. 위령기도(연도)를 열심히 하는 신자들은 다 외워서 하는 시편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편 50,3)이다.

 

다윗이 거룩한 왕이라 불리고, 또 훗날 오실 구세주 메시아의 전형으로 꼽히곤 하는데, 이는 그가 죄를 모르는 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죄를 지었지만 겸손하게 죄를 인정하여 고백하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해 죄를 짓는다. 그러나 우리도 죄를 지으면 변명을 늘어놓거나 부인하지 말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업신여기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다. 그래서 시편 51장은 우리 모두가 외워서 부를 시편 중 하나이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시편 51,3-4).

 

[평화신문, 2013년 1월 27일, 백남용 신부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전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