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를 살다] 예물 준비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는 것으로써 이제 말씀의 전례가 끝나면 예물 준비가 시작됩니다. 공동체로부터 빵과 포도주를 손에 든 행렬이 제단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빵과 포도주는 생활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에서 생산되는 것입니다. 사실 거룩한 제물을 준비하는 데는 약간의 빵과 포도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예물로 많은 것을 희사했고 교회는 그것을 교회의 사업과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데 사용했습니다.
초세기의 예물 준비는 교우들이 빵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오면 부제가 받아서 사제에게 주고, 사제는 그것을 제대에 놓고 바로 감사기도로 들어갔습니다. 4세기 무렵부터 교우들이 증가하면서 예물이 다양해지고 예물봉헌 행렬도 길어지게 되어, 긴 행렬 동안 가만히 있기 보다는 예물 봉헌에 알맞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예물은 기름, 초, 기타 자선 예물 등으로 더욱 다양해졌고, 11세기 이후 화폐제도가 발달하면서 예물 봉헌이 헌금으로 대체되어 간편해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물 봉헌을 제물 봉헌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자연적 심리에다 미사의 제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신학자들에 의해 예물 준비가 제물 봉헌 행사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7세기에 이르러서는 교우들의 예물 자체가 제물, 제사 형식이 되고 명칭조차도 ‘봉헌 예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미사 중에 봉헌하는 본 제물은 교우들이 바치는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며, 이 제물은 감사기도 중에 십자가의 제물로 축성되어 봉헌됩니다. 그러므로 이 예식의 명칭은 ‘예물 준비’이지 ‘제물 봉헌’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미사 통상문 예규(rubrica)는 ‘예물 준비 기도’라고 제목을 붙이고 “사제는 제대에 가서 빵이 담긴 성반을 조금 들어 올리고 기도한다.”고 지시하고 마찬가지로 성작을 두고 “사제는 성작을 조금 들어 올리고 기도한다.”고 지시합니다.
사제는 교우들이 가져온 예물(빵과 포도주)을 받아 제대 위에 정중하게 놓고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문은 우리가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때 빵과 포도주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연의 혜택만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의 노동과 희생, 인간적인 허약이나 부족한 점까지도 포함한 우리 자신 전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전체를 상징합니다. 그 다음 사제는 초대교회에서 실제로 빵과 포도주, 기름 등을 받고 난 후 손을 씻었던 과정을 시대가 흐른 후 그 흔적을 영적인 의미로 재해석하는 정화의 기도를 바치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상징으로 손을 씻습니다.
초세기에는 교우들이 자기 집에서 직접 예물을 가져와서 사제에게 바쳤기 때문에 그 많은 예물을 만진 사제는 손을 씻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깨끗한 성합이나 성반, 그리고 성작에 제병과 포도주를 담아오기 때문에 손을 씻을 필요가 없지만 몸과 마음을 깨끗이하여 성찬에 임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 손 씻는 예절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때 바치는 기도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는 내적 정화를 청하는 시편25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으며 14세기경에 로마 전례에 들어 왔습니다. 이어 사제는 교우들을 향해 지금 바치는 이 예물이 하느님께 의합한 예물이 되도록 하자는 기도에로 초대를 하고 교우들의 화답이 있은 후, 예물 준비를 마감하며 동시에 곧 있을 성찬 전례를 준비하는 「예물기도」를 바칩니다.
예물기도는 본기도와 성찬 후 기도(영성체 후 기도)와 더불어 주도자인 사제의 기도 중 하나입니다. 사제는 이 기도를 과거와는 달리 크게, 그리고 팔을 펼치고 바칩니다. 항상 되풀이 되는 이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예물과 기도들,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 자신의 제사도 받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축일에는 자주 그날의 신비를 일깨웁니다. 이상으로 본격적인 성찬식을 거행하기 위한 예물 준비는 끝납니다.
감사기도 (I)
유럽의 고딕양식 성당이나 바로크양식 성당에 들어가면 거기서 많은 제단을 보게 됩니다. 그중 중앙에 있는 제단은 다른 제단들보다 크고 장식도 잘되어 있습니다. 그 제단을 “중앙 제단”이라고 합니다.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하느님께 감사하거나 무엇을 청할 때 여러 가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기도보다도 그 의미가 깊은 기도가 있습니다. 그 기도는 가장 중요한 예배인 미사성제 한가운데서 바쳐지는데 그것을 ‘감사기도’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를 ‘성찬기도’라고 불렀습니다.
복음사가들 중에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즉 최후 만찬 때 당신 제자들과 함께 바치신 감사기도를 기록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감사기도의 형식과 표현은 단 한번 영구불변하게 고정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변화 될 수 있고 또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감사받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초세기나 10세기와는 다른 언어로 감사받으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는 새로이 감사기도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감사기도가 많이 있고 또 다른 교회의 미사 기도에서 발견된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 기도에 종국적으로 관련되는 실제성, 인간이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함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 세상 어디서나 똑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제 감사기도를 좀 자세히 살피고 그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감사기도는 감사송 전에 사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는 말로써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마침 영광송 다음에 공동체가 “아멘!”하고 대답함으로써 끝납니다. 우선 신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감사기도는 집전자가 바치는 직무상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즉 주교나 사제가 직무상 바치는 기도입니다. 미사 전례가 사제의 임무라고 해서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불완전한 표현입니다. 물론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서는 사제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제가 성체성사 제정의 말씀을 하기 전에 아버지께 이렇게 청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성령을 통해서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사제는 미사 중에 감사의 기도를 하느님께 바치도록 위임받았습니다. 신학자들의 말과 같이 사제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이를 행합니다. 또 미사경본 총지침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듯이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회중을 이끄는 사제가 거룩한 백성 전체와 모든 참석자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다.”(미사경본 총지침 30항) 그러므로 사제는 직무상의 다른 기도와 마찬가지로 감사기도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공동체의 이름으로, 온 교회의 이름으로 바칩니다. 그래서 사제는 복수형으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우리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주님께 간청하나이다.” 그래서 사제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감사기도를 바칩니다.
[월간빛, 2014년 3월호] |
'<가톨릭 관련> > ◆ 전례 & 미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창덕 신부의 전례 이야기 ② 십자성호 (0) | 2014.04.22 |
---|---|
[가톨릭 신앙의 보물] (14) 사순시기와 부활시기 (0) | 2014.03.18 |
[하느님의 시간 속에 인간의 시간] 전례주년에 따른 여정 - 사순절 1 (0) | 2014.03.15 |
[전례를 살다] 성찬 전례 (0) | 2014.02.16 |
[가톨릭 신앙의 보물] (9) 성수 (0) | 2014.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