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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회미술산책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23) 존 데이비드 헤이워드와 노동자 그리스도

by 파스칼바이런 2015. 1. 14.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23) 존 데이비드 헤이워드와 노동자 그리스도

발행일 : 2015-01-11 [제2927호, 12면]

 

 

일상의 노동자로 재현된 청년예수

오랜 노동으로 인한 거친 손발의 인간으로 표현돼

노동자들에 ‘연대’ 제시, 성소자에겐 ‘실천의 삶’ 의미

 

 

▲ 존 헤이워드, ‘노동자 그리스도’(Christ the Worker), 1965, 목판에 유화,

사우스워크 서품수련코스 컨퍼런스 센터 채플

(Southwark Ordination Course Conference Centre chapel), 블레칭리(Blechingley).

 

 

1929년 영국 런던 남쪽 투팅(Tooting)에서 태어났고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알려진 존 데이비드 헤이워드(John David Hayward, 1929~2007)는 일찍이 미술교사를 꿈꾸며 드로잉과 그림에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세이트 마틴 스쿨(St Martin,s School of Art) 재학시절 그는 신인상파화가였던 쇠라(Georges Pierre Seurat, 1859~1891)와 15세기 이탈리아의 거장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6(?)~1492)의 화법에 심취했다. 또한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의 비잔틴 모자이크에 영감을 받았고 그 이미지들의 색채와 형상에 매료되기도 했다. 줄곧 그의 관심은 교회 가구를 디자인하거나 유리가 중요한 요소가 되는 교회 인테리어 예술에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진로를 종교공예가들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였고 영국뿐 아니라 해외에서 교회와 대성당을 위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과 교회 내부 공간을 위한 종교 미술품들을 제작하였다. 그 결과, 특히 전후(戰後) 영국에서 현대적인 유리 공예가 가운데 한사람으로 알려져 왔다.

 

 

▲ 사우스워크 서품수련코스 컨퍼런스 센터 채플.

 

1961년 프리랜서를 선언한 그는 사우스워크(Southwark) 서품식 센터 가까이에 있는 블레칭리(Blechingley)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는 전후 교회건축 붐 속에서 폐허가 된 렌 교회(Wren church)를 위한 창문설계를 필두로 다수의 스테인드글라스 및 벽화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의 작업 중에는 다소 파격적인 조각품들도 있다. 런던 북부 해크니(Hackney)에 ‘성 미카엘과 모든 천사들을 위한 교회’ 입구에 실제 중세 기사를 방불케하는 알루미늄 갑옷을 입은 대천사 미카엘을 제작했고, 랭카셔(Lancashire)의 블랙번대성당(Blackburn Cathedral) 서쪽 문 위에는 면직공업이 번성했던 랭카셔의 노동자들을 기리는 ‘노동자 그리스도’ Christ the worker(1963~1968)라는 독특한 조각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또 다른 그림은 사우스워크(Southwark)의 교구 수련센터 채플 안쪽, 나무 십자가 위에 그려진 ‘노동자 그리스도’ Christ the worker(1965)이다.

 

일상적인 검정 노동 복 위에 긴 흰색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는 예수는 그것이 수도사들의 일터가 되었든 심지어 일반 사람들이 일하는 공장이나 도축장, 마구간이든 아니면 주유소나 세차장이든 오랜 노동으로 생긴 팔과 거친 손을 지닌 인간으로 표현되어 있다. 노동하는 한 인간으로 묘사된 이 낯선 예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십자가의 그분임을 알려주는 증거들은 그의 형상이 십자가 위에 있으며 손과 발에 생긴 못 박힌 상처들뿐이다. 성서와 교리를 통해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십자가의 예수가 서른셋 노동하는 청년인 것이 왜 이리도 어색해 보이는 것일까?

 

먼저 우리는 종교미술사에서 ‘노동’을 주제로 다루었던 예를 쉽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글로 쓰여진 성서보다 자유로운 서술이 가능한 미술사에서도 대부분의 예수는 노동하는 한 인간보다는 역시 종교적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의 키워드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아마도 성 요셉이었을 것이다. 그는 목수로 알려져 있고 이 때문에 그는 제단화를 비롯한 여러 종교적 작품에서 목공일을 하는 모습으로 자주 재현되었다. 심지어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작품에서는 목공작업을 하는 성 요셉의 일터에 마리아와 예수, 성 요한이 등장하기도 했다.

 

헤이워드의 작품이 낯선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작품이 ‘청년예수’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라파엘전파의 작품 ‘베드로의 발을 씻기는 예수’(1852~1856)에서 제자의 발을 씻기는 예수는 그 역시 성인(成人)남성의 근육을 가진 노동하는 인간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예수를 성서의 일화 속에서 묘사하는 정도가 아닌, 우리들의 일상에서 노동하는 청년의 모습으로 재현한 예는 헤이워드의 독특한 특징이다. 이러한 그의 새로운 시각들이 전통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서 현대적인 이미지를 시도했던 대담함의 원천이 나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젊은 청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노동자 그리스도’는 단순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성직자와 수도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수련자들에게는 실천의 삶을 안내하고, 노동의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는 유대와 연대감을, 미생(未生)에서 완생(完生)을 꿈꾸는 젊은 청년에게는 희망 그 자체로 존재할 것이다.

 


 

최정선: 미술사학자

 

최정선 선생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로 박사학위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대에 출강하며, 경기도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