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24) 그레이엄 서덜랜드와 ‘십자가 처형’ 발행일 : 2015-01-25 [제2929호, 12면]
지금, 이 자리에서 피 흘리시는 예수님 ‘십자가 희생과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 시사 신앙의 근본적 물음 교회 미술 속에서 찾아
▲ 영국 런던 성 아이다노 성당에 있는 그레이엄 서덜랜드의 작품 ‘십자가 처형’.
▲ 그레이엄 서덜랜드.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제일 마지막 순서에 근대 종교미술 작품을 만나게 된다. 19세기 말 봇물처럼 터져 나온 아방가르드의 전위적인 양식과 전후(戰後)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표현방법으로 제작된 80여 점의 작품들 사이에, 그레이엄 서덜랜드(Graham Vivian Sutherland, 1903~1980)의 ‘십자가 처형을 위한 습작’(Study for Crucifixion, 1947)이 눈에 띈다. 비비꼬이고 뒤틀린 육체, 엉망으로 풀어헤쳐진 머리카락, 마구잡이로 아무렇게나 칠한 듯한 배경 등, 습작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거칠고 혼란스러운 화면은 관람자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한다. 그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려야 했을까?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서덜랜드는 서른 살이 되어서야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웨일스 지방의 아름답고 목가적인 경치를 화폭에 담았으며, 다소 낭만적인 분위기를 추구하였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환상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그려내기도 하였으므로, 초현실주의 작가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종군화가로 활약하게 된 이후로, 서덜랜드는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의 흉물스럽고 음산한 풍경, 그리고 광산과 채석장 노동자들의 모습을 불안하고 어두운 화폭에 담기 시작하였다. 작품은 점차 성마르고 격앙된 어조를 띠었고, 날카롭고 기묘한 형태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가 이런 표현주의적 방식 외에 어떤 다른 것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성 아이다노(St.Aidan of Lindisfarn) 성당의 ‘십자가 처형’(Crucifixion, 1958~1961)은 화가로서 그리고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완숙기에 접어든 서덜랜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제단의 흰색 벽에 걸린 선명한 붉은색의 그림은 마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강렬함으로 신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커멓게 움푹 꺼진 배, 육중한 못에 박힌 손과 발, 뒤틀린 정강이뼈, 머리를 짓누르는 커다란 가시관은 고통의 깊이를 보는 이에게 직접 전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 보이는 붉은 갓 전등과 등 뒤에 드리워진 검은 커튼, 화면 아랫부분에 그려진 접근금지를 알리는 철책과 노란 띠는 마치 전쟁 중 자행된 고문과 폭행의 한 장면처럼 섬뜩하다.
1963년, 서덜랜드의 제단화가 성 아이다노 성당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고, 작품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꽤 많았다. 고상하지 않다거나 성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죽음과 고통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그림을 보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도 너무나 끔찍하고 괴로운 경험이 된다. 악몽처럼 충격적인 이 그림이 시각적 만족이나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왜?’라는 물음과 함께 그리스도의 고통의 의미를 다시 찾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십자가의 죽음과 고통이, 희미하게 멀어지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구체적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죄악과 타락, 그리고 멸망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계획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완성되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는 저렇게 피를 흘리고 뒤틀린 모습으로 신음하고 계신가?’ 서덜랜드는 이런 엄숙하고도 무거운 질문을 우리 각자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서덜랜드의 위대함은 그가 단순히 전쟁의 비참함, 파괴된 인간성, 공포와 절망을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형태로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데 있지는 않다. 미술사에 있어서 그런 업적은 동시대를 살았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과 같은 작가에 의해 더 뚜렷하게,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찢어지고 해체된 인간의 육체를 불쾌한 고깃덩어리로 남겨둔 베이컨과는 달리, 서덜랜드는 이를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도구로 삼았다. 인간의 고통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그의 작품은 이에 대한 처절한 물음이자 대답이었다. 당대의 실존주의 철학이 제시할 수 없는 답을 서덜랜드는 가톨릭 신앙과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찾아내었고, 그리하여 그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종교화가 중 한 명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조수정씨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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