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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회미술산책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27) 베르나르드 뷔페와 ‘최후의 만찬’

by 파스칼바이런 2015. 3. 16.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27) 베르나르드 뷔페와 ‘최후의 만찬’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5-03-15 [제2935호, 12면]

 

 

극도에 달한 수난… 숨 멈출듯한 슬픔의 정적

긴장된 표정… 까칠하게 깡마른 인물들

여백 없는 메마른 화면, 다가올 고통 시사

 

 ▲ 바티칸 현대종교미술컬렉션에 소장된 베르나르드 뷔페의 작품 ‘최후의 만찬’, 1961.

 

 

 ▲ 베르나르드 뷔페.

 

프랑스 출신의 작가 베르나르드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는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던 시기에 야간학교에서 데생을 배워 에꼴 데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 입학할 만큼 실력과 열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서른 살 나이에 능력을 인정받아 첫 번째 회고전(1958년)을 열었고 해마다 테마 있는 전시를 했던 작가로도 유명하다. 특히 그의 작품은 전후(戰後) 유럽에서 추상(抽象)이 미술계에 위력을 발휘할 때도 새로운 구상회화의 가능성을 파리화단에 보여주었다.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 1947), 앙데팡당전(La Société des Artistes Indépendant, 1947)등의 출품 작가였고, 비평가상(Prix de la Critique, 1948), 퓌비드 샤반느상(Prix Puivis de Chavannes, 1950), 레종 도뇌르 훈장(Legion d’Honneur, 1973) 수상과 아카데미 보자르(Académie des Beaux-Arts)의 회원이었던 이력은 그가 당대 미술계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독특한 화풍은 전쟁 직후 어두운 사회현실과 인간의 불안, 고뇌 등을 표현하는데 목표를 두었던 그룹 옴 테무앵(Homme Témoin:목격자)의 활동덕분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등장한 이 그룹 활동의 경험은 전쟁이 작가의 화풍에 끼친 영향을 짐작하게 해준다. 1952년 ‘그리스도의 수난’ 전(展)을 시작으로 그는 종교적인 작품 외에도 풍경과 인물, 정물 할 것 없이 그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표출했다. 생전에 그는 무려 8천여 점이 넘는 그림을 제작했고 회화 뿐 아니라 조각, 판화, 우표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작가였다. 일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도 그의 컬렉션이 있을 만큼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안타깝게도 말년에 얻은 파킨슨병은 다시는 그를 작가로서 살 수 없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많은 미술관 중에서도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의 현대미술 컬렉션(Collection of Modern Religious Art)에는 뷔페의 주목할 만한 종교적인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작품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생경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가혹하리만큼 절제된 화면 안에는 인물들과 식탁 외에 아무것도 없다. 전통적인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었고 소묘를 중시했던 그의 특징은 이 작품에서도 선적인 묘사로 드러난다. 여기에 뷔페는 단순한 사실주의를 떠나 인체를 왜곡시키거나 변형시키고 색채의 효과를 실험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미술의 조형성을 실험하는 것 이상으로 강렬한 감정을 감상자들에게 전달한다.

 

작가로서 뷔페는 “그림과 이야기 하지도 그림을 분석하지도 않고 그저 그것을 느낄 뿐”이라고 말한다. 화면을 꽉 메운 인물들과 가로 놓인 테이블, 어둡고 침침한 인물들의 복장과 표정은 숨이 멈춰 버릴 것 같은 슬픔의 정적(靜寂)을 만들어낸다. 작품을 압도적으로 지배적하는 우울한 전조(前趙)때문에 감상자들은 다른 것에 신경 쓸 틈도 없이, 오히려 각 인물들을 심정적으로, 그리고 화면을 시각적으로 촘촘하게 분석하게 된다. 비로소 감상자는 만찬 장면을 들여다보는 객관적 자세를 버리고 만찬에 참여한 인물들의 온전한 심정(心情)을 읽어내는데 주력할 것이다. 명분 있는 고통과 죽음이라고 해서 그들이 왜 두렵고 힘겹지 않았겠는가? 뷔페는 까칠까칠하게 깡마른 인물들의 표정에 맞게 그들의 황량한 마음을 청, 백, 흑, 갈색으로 재현했다. 수직과 수평의 구도, 삼각, 사각, 원의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된 인물과 사물형태는 일체의 정서적 여백과 감성을 허락하지 않고 메마른 화면을 제시한다.

 

사족 없이 함축된 이 화면 구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슬픔을 더욱 가중시키면서도 견고한 절제를 요구한다. 특히 근경에 가로 놓인 탁자는 예수와 제자들로부터 고립된 유다를 더욱 고독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슬픔과 긴장이 극도에 다다른 바로 지금, 뷔페의 이 그림 앞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을 아는 누군가가, 사랑했던 이들과 나누는 마지막 식사의 순간은 숱한 고독과 비장할 만큼 자신을 깎아내고 눈물을 여과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슬프고도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최정선: 미술사학자

 

최정선 선생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로 박사학위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대에 출강하며, 경기도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