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성인과 성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 렘브란트

by 파스칼바이런 2015. 10. 10.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 렘브란트

1627년, 32×42㎝, 베를린 국립 회화관

 

 

[말씀이 있는 그림] 하늘에 쌓을 재물

 

빛의 화가라 불리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 렘브란트는 광선을 중요시한 화가답게 빛과 어둠의 표현을 통하여 주제의 의미를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엄청난 소출을 밭에서 거둔 한 부자는 전 재산을 쌓아 두고서, 몇 년간 편히 먹고 마시며 쉬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이것은 부자의 생각일 뿐이다. 하느님의 계획은 그 날 밤 그의 영혼을 거두어 가시려 한다.

 

어두운 방에서 한 나이 든 부자가 동전 하나를 주의 깊게 불빛에 비춰보고 있다. 불빛 바로 앞이긴 하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경을 끼고, 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돈의 가치를 음미하고 있다. 깊은 침묵이 감돈다. 잠자리에 들 심야에도 밤잠을 잊고 오로지 재물에만 몰두하고 있다. 부자 노인은 어마어마한 재산관리 문제 때문에 고민 아닌 고민으로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을 것이다. 그의 방안에는 수많은 땅문서며, 남에게 돈을 빌려준 차용증, 각종 서류 뭉치와 책상 주변에 흩어진 금화와 은화, 돈 가방으로 정말 책상 가득 쌓을 곳이 없어 보인다. 촛불에 동전을 비춰 보는 노인의 모습은 꼼꼼한 자신의 자산관리를 연상시키고, 빽빽이 쌓인 서류들은 부의 축적을 위한 많은 계산과 거래를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재물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잠조차 설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재산 못지않게 그가 입고 있는 옷 역시 당시 네덜란드 부르주아 계급의 흰 가운에 화려한 금실의 수로 바느질한 옷술과 정교한 장식까지 물질적 풍요를 시각적으로 분명히 드러낸다.

 

이 정도의 재산이라면 기뻐해도 되건만, 그의 표정은 긴장과 걱정이 가득하다. 그의 듬성듬성한 수염과 가운데로 모인 입술은 초조하고 불안한 노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불안한 심리 상태는 촛불이 꺼질까 조심스럽게 손으로 가리고 있는 동작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이토록 두렵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책상 위에 저울도 내려놓은 채, 동전을 세심히 관찰하는 모습에서 노인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돈을 환한 촛불 아래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빛은 오로지 돈을 점검하는 데에만 사용하고 있다. 촛불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그와 주변 사물들을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촛불은 동전을 든 노인의 오른손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촛불은 눈부신 찬란함으로 하느님의 상징이다. 노인은 동전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부자이다. 자기 앞에 놓은 작은 저울의 쓰임새, 곧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도구를 눈앞에서 보면서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렘브란트가 이 작품을 그렸을 때가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고, 마치 자신의 앞날을 내다본 듯했다. 그는 20대 중반에 명성을 얻어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림의 주인공처럼 부자가 된 렘브란트는 집을 사고 사치품을 모으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로 그는 평생을 돈 때문에 힘든 생활을 보냈다. 어리석은 부자를 감싸고 있는 것은 서류뭉치와 돈 가방이었고, 렘브란트에게는 허영과 값비싼 물품이 둘러싸여 있었다. 화가는 자신에 대해 질책이라도 하는 듯, 자신을 위해서만 재물을 쌓으려는 탐욕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 부자가 된다 하여도, 제집의 영광을 드높인다 하여도 불안해하지 마라. 죽을 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그의 영광도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시편 49,17-18)

 

[2015년 9월 27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