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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전 례 음 악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5> 93 임하소서 임마누엘 (하)

by 파스칼바이런 2016. 12. 27.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5> 93 임하소서 임마누엘 (하)

가톨릭 전통과 성공회 갈등 녹아 있어...

영국 사제 닐이 라틴어 가사를 영어로 번역

평화신문 2016. 12. 25발행 [1395호]

 

 

대림 시기 중 17일부터 24일까지 시간전례 저녁 기도의 ‘마리아의 노래’ 안티폰은 특별히 ‘오’라는 감탄사로 시작한다. 오시는 그리스도를 7가지의 서로 다른 호칭으로 부르며 기도하는 구조로 돼 있다.

 

그런데 17~19세기 출판된 「가톨릭 시편 노래집」(Psalteriolum Cantionum Catholicarum)은 이 안티폰을 바탕으로 5개의 절로 이뤄진 정형화된 찬미가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다. 이후 정확한 시점과 작자는 알 수 없지만 ‘체칠리아 운동’(그레고리오 성가 복원을 중심으로 한 교회 음악 쇄신 운동)의 영향으로 생략됐던 2개의 호칭이 추가돼 다시 7개의 가사로 꾸며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 7개의 절을 4주간의 대림 시기에 적절히 배분해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고도 한다. 대림 제1주일은 1절과 2절을, 제2주일은 3절과 4절, 제3주일 5절과 6절, 제4주일은 다시 1절과 7절을 부르는 식이다.

 

이렇게 안티폰에서 비롯된 가사가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선율과 합쳐져 나타난다. 이를 선보인 최초의 악보는 1851년 영국 교회 음악가인 헬모어(Thomas Helmore, 1811~1890)가 닐(John Mason Neale, 1818~1866)과 함께 출판한 「Hymnal Noted」(유명한 찬미가 모음집)이다. 헬모어는 이 선율을 리스본의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프랑스어 미사곡집에서 가지고 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 전문학자이면서 합창 지휘자였던 베리(Mary Berry, 수도명은 토마스 모어, 1917~2008) 수녀가 1966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15세기쯤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사용하던 전례문에서 이 선율을 발견했다. 여기서 이 선율은 ‘Bone Jesu dulcis cunctis’(모두에게 선하시고 자애하신 예수여)라는 가사와 함께 무덤으로 가는 장례 행렬용 성가의 하나로 수록돼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재 이 선율은 15세기에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찬미가는 라틴어의 문학적 특성상 여러 가지 선율과 함께 불리기도 했을 뿐 아니라, 영어 및 독일어로도 번역돼 그에 따라 몇 개의 선율로 사용됐다. 그러나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부르는 이 선율과 합쳐지게 된 데에는 라틴어 가사를 영어로 번역한 영국 사제 닐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성공회 추기경이었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뉴먼 추기경의 ‘옥스포드 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로마 가톨릭의 라틴 문화와 전례문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많은 라틴어 찬미가와 기도문들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로마의 구교회와 성공회를 연결하고자 시도했다. 때문에 성공회 주교에게 14년 동안 직무 정지를 받기도 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

 

이 성가에는 우리 교회의 오랜 전통과 닐로 대표되는 성공회의 갈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 Hymnal Noted의 1851년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