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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자비의 성모 (4) - 페오도르의 성모

by 파스칼바이런 2017. 1. 11.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자비의 성모 (4) - 페오도르의 성모

가톨릭신문 2017-01-08 [제3027호, 13면]

 

 

‘페오도르의 성모’ 작가, 연대 미상.

 

 

‘페오도르의 성모’(Feodorovskaya) 이콘은 러시아 로마노프 황실에서 가장 존경하던 이콘 중 하나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지내는 축일은 3월 14일과 3월 27일, 8월 29일이다.

 

페오도르의 성모는 이미 소개한 ‘블라디미르의 성모’와 같이 비잔틴의 엘레우사(자비의 성모)의 한 형태로 성모님과 아기 예수가 뺨을 마주대고 있다.

 

이 성모 성화 원화는 러시아 볼가강 근처 코스트로마의 동쪽에 위치한 고로데츠 수도원(현재 니지니 노브고도르 지역)에 보존됐던 것으로 전해온다. 그런데 칸 바투가 이끄는 몽골족의 침입과 방화, 약탈 등으로 이 수도원과 인근 마을이 초토화되자 이 이콘도 함께 불에 타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1239년 8월 16일, 코스트로마의 대공 바실리가 고로데츠 인근 숲에서 사냥을 하며 숲속의 덤불들을 헤치고 나아가다, 전나무 가지들 사이에서 이 성모 이콘을 발견했다. 그가 이 이콘을 잡기 위해 손을 뻗자 그 이콘은 신비하게도 공중에 떠올랐다. 이에 깜짝 놀란 대공은 코스트로마로 돌아가 시민들에게 자신이 목격한 것을 알리고 사람들을 이끌고 그 숲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이 성모 이콘 앞에 이르러 모두 엎드려 경의를 표하고 함께 기도를 바쳤다. 그런 다음 이 성모 이콘을 코스트로마 시로 이송하고 성모승천성당에 모셨다. 그 후 고로데츠 사람들은 이 성모 이콘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이것이 원래 고로데츠 지역 수도원에 보관됐던 것이었기에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오랜 소송 끝에 코스트로마 사람들은 이 이콘을 복사해 사본을 고로데츠에 보내는 데 합의했다.

 

1260년경 다시금 타타르인들이 코스트로마에 쳐들어왔다. 이때 코스트로마의 대공과 러시아 군인들은 성모님께 도움을 간절히 청하는 기도를 바치며, 이 성모 이콘을 앞세우고 타타르 군대 앞에 마주 서자 큰 기적이 일어났다.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는 빛이 이 이콘에서 뿜어져 나와, 타타르인들이 순간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 큰 두려움에서 떨며 퇴각했다. 이후로도 이 성모 이콘을 통해 많은 치유와 기적이 일어났다.

 

1613년 미하일 로마노프가 새로운 러시아의 황제로 선출됐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크세니아와 코스트로마에 살고 있었다. 크세니아는 새 황제로 선출된 아들 미하일을 축복하고, 성모님께서 미하일과 황실의 후손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이 성모 성화의 사본을 전달했다. 젊은 황제는 이 거룩한 성모 성화의 사본을 모스크바로 모시고와 로마노프 황가의 거룩한 수호자로 공경했다.

 

1913년 로마노프 황실 300주년을 맞아 이 성화의 원화가 보존된 코스트로마는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또한 황실의 가족들은 이 성당에서 1917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페오도로의 성모’를 자신들의 수호자로 공경하며 기도를 바쳤다.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