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숲] 영성체 (1)
영성체는 성체 성혈, 곧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예식입니다. 미사가 잔치, 곧 공동식사라면 영성체는 빠뜨릴 수 없는 본질 부분입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음료를 마시지 않는 식사는 정상이 아니고 식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통에 따라 주례가 먼저 영성체를 합니다. “주례 사제 또는 공동 집전 사제는 신자들 뒤에 영성체를 해서는 결코 안 된다.”(구원의 성사 97)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관습은 초 세기부터 내려온 관습으로 동방 교회들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직자보다 신자들이 먼저 영성체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식사에서 주인은 손님에게 먼저 음식을 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와 영성체에서 신자들은 손님이 아닙니다. 주례와 봉사자들과 함께 주인입니다. 사제는 주인이라기보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봉사자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로서 회중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 대표로서 가장 먼저 영성체를 합니다.
교우들은 봉사자에게서 성체와 성혈을 받습니다. 신자들은 스스로 모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빵을 주시고 잔을 건네주신 분이 예수님이었듯이 봉사자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성체와 성혈을 모시기에 앞서 신앙선언을 합니다. 이미 3세기에 정해진 기도문이 나타납니다(사도전승). “(주교는) 빵을 쪼개어 한 조각을 주면서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천상의 빵입니다.’ 그러면 영성체 하는 이는 대답할 것입니다. ‘아멘.’”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우구스티노가 증언하듯이 고대 로마 교회에서는 보통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 신자는 “아멘”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멘”은 인장을 찍는 것으로 하나의 신앙 고백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을 듣고 ‘아멘’ 하고 대답합니다. 그대의 아멘이 참되기 때문에 그대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됩니다.”
성체와 성혈을 모시기에 앞서 신앙선언
주님의 몸에 대한 공경 때문에 다른 표현들이 생겨났습니다. 전례 전통에 따라 다양합니다(L. 데이스). - “이는 주 우리 하느님 구세주의 거룩한 몸, 귀중한 피.”(성 마르코 전례). -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 그리스도의 몸,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잔, 그리스도의 피.”(이집트 전례). -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팔레스티나 전례).
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로마 교회에서는 중세에 생긴 기도문을 사용하였습니다. 청원 기도 형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저의(그대의) 영혼을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사제는 신자들을 위해서도 이 기도를 바쳤고, 신자들은 아무 말 없이 성체를 모셨습니다. 성체를 손이 아니라 혀로 받아 모신 역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공의회 이후 미사경본은 사제 영성체와 신자들의 영성체를 위하여 다른 기도문을 제시합니다. 사제는 옛 기도문을 단순하게 다듬은 기도문을 바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피는) 저의 영혼을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이 기도문은 영성체가 거룩한 식사로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한다(요한 6, 54)는 뜻을 밝힙니다. 또한 영성체를 통하여 예수님의 마지막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의 영광스런 몸과 결합되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 신자들의 영성체를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고대의 단순한 구절을 사용합니다. 봉사자는 영성체하려는 이 앞에서 성체나 성작을 조금 높이 들어 “그리스도 몸(피)!” 하고 말합니다. 성체를 성혈에 적시어 줄 때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 합니다. 이 순간 그는 먼저 믿음과 존경심을 가지고 성체와 성혈에 경의를 표하고(총지침 160), 이어서 분명하게 “아멘”으로 대답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현존에 관한 믿음을 고백하며 성체와 성혈을 받습니다.
영성체에서는 보통 행렬을 합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질서 있고 품위 있게 이동하려면 순서를 지어 행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이 행렬은 성체를 모시려는 이들이 이루는 일치를 드러내면서 영성체가 공동체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한편, 전례에서 모든 다른 행렬이(입당 행렬, 예물 봉헌 행렬) 그러하듯이 영성체 행렬도 순례하는 교회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행렬은 성체가 하늘나라를 향한 여행을 위한 음식임을 드러내고, 영성체를 통하여 바라던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받는다는 확신을 표현합니다.
영성체 성가는 영성체 하는 신자들의 일치 드러내
행렬하는 동안 성가(영성체송이나 다른 성가)를 부릅니다. 영성체 성가는 4세기에 증언이 있는 매우 오래된 미사 요소입니다. 고대에는 선창자가 시편 구절을 노래하고 신자들은 같은 후렴으로 화답하였습니다. 144(145), 시편 33(34)을 자주 불렀습니다. 예루살렘의 치릴로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거룩한 노래로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초대하는 선창의 노래를 들으십시오. 그는 노래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마찬가지로 시편 144(145), 15도 영성체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
영성체 성가는 기능성 성가이므로 영성체를 하는 동안에 부릅니다. 곧 주례가 성체를 모실 때 시작하고, 신자들이 영성체 하는 동안 계속합니다. 다만 영성체 뒤에 찬미나 감사 성가가 있을 때는 알맞은 때 끝냅니다(총지침 86). 이 지침은 찬미나 감사 성가를 부르기 위한 여백을 주고, 무엇보다 교우들에게 영성체 뒤에 침묵과 묵상의 시간을 주기 위한 배려입니다.
영성체 성가의 기능은 세 가지입니다. 영성체 하는 신자들의 일치를 드러내고, 기쁨을 표시하며, 영성체 행렬이 더욱 형제적 성격을 띠게 하는 것입니다(총지침 86). 성가는 성가대 홀로 부르거나 성가대나 선창이 교우들과 함께 부를 수 있습니다(총지침 87). 회중이 다 함께 부르는 방식은 제시하지 않는데 신자들이 행렬을 하면서 노래에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지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 관습에 따라 신자들이 성가에 참여하는 것이 미사경본의 개정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영성체 성가로 로마 성가집들에 나오는 성가나 주교회의가 인준한 성가를 부릅니다. 노래하지 않을 때는 미사경본에 실린 영성체송을 낭송합니다. 신자들 전체나 몇 사람이나 독서자가 낭송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사제 자신이 영성체 한 뒤에,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주기 전에 바칩니다.
영성체 뒤에 찬미나 감사 성가를 부를 때에는 경우에 따라 이 낭송 방식도 사목 이유에서 좋을 수 있습니다. (영성체 성가 또는 영성체송은 꼭 해야 하고, 영성체(와 침묵) 뒤에 하는 찬미 성가는 선택입니다. 두 성가의 기능과 내용이 전혀 다르고 달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성체 뒤에 하는 성가를 영성체 성가로 갈음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미사경본에 실린 영성체송들은 거의 시편이나 다른 성경 구절을 인용합니다. 내용은 영성체와 관련이 있거나 전례 시기 또는 그날(축제, 예식, 기원, 신심, 위령) 미사와 연결됩니다. 영성체 성가를 고를 때 참고해야 할 부분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9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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