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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전례 & 미사

새로 나오는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by 파스칼바이런 2017. 10. 24.

[경향 돋보기 - 새로 나오는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미사 경본의 간추린 역사

 

 

 

 

전례는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교회의 공적인 기도이다. 그러므로 정해진 내용과 절차를 책에 담아 사도좌의 권위로 반포하는데 이 책을 ‘전례서’라고 한다. 모든 전례와 교회 생활의 중심은 미사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반포된 ‘미사 전례서’는, 기도문을 담고 있는 「로마 미사 경본」과 선포될 말씀을 담고 있는 「미사 독서」, 그리고 성가를 담고 있는 「미사 성가」이다. 동·서방 교회에는 여러 전례 전통이 존재하는데, 한국 천주교회의 전례는 로마 예법에 속하며, 이 예법에 따른 미사 경본을 「로마 미사 경본」이라고 한다.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의 반포를 앞둔 지금, 초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사 전례서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미사 경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유익하다.

 

리벨루스

 

처음에는 전례문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정해진 내용과 형식에 따라 즉흥적으로 기도를 바쳤다. 2세기 문헌인 「열두 사도의 가르침」 9장과 10장에는 감사 기도가 나오는데, 고정된 본문을 제시하는 대신에 “이렇게 감사드리시오.”라고 말하면서 하나의 모범적인 보기를 제시한다.

 

3-4세기에 접어들어 미사 전례문을 글로 적어서 낭송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부터 미사 경본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어떤 특정 미사에 사용할 전례문을 낱장의 문서에 적어서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낱장을 ‘리벨루스’(libellus)라고 한다.

 

성사집

 

사제가 전례문을 즉흥적으로 낭송하거나 임의로 작성하는 것이 사제의 신학적 소양 부족 또는 이단 사상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되자 교회는 전례문을 고정하였다. 407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모든 전례문은 공적으로 교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103항)고 규정하였다. 6세기 이후에 한 권으로 묶은 미사 전례서가 등장하는데, 이를 ‘성사집’(聖事集; sacramentarium)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미사’라는 용어가 아직 사용되지 않았고 성찬례를 그냥 ‘성사’(sacramentum)라고 불렀다.

 

현존하는 최초의 성사집은 7세기에 편집된 ‘베로나 성사집’(Sacramentarium Veronense=Ve)인데, 6세기에 작성된 리벨루스들을 한데 묶어 놓은 것이다. 이는 본디 교황청 미사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후의 성사집들은 리벨루스의 묶음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 권의 책(codex)으로 만들어졌다. 작성 연대가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로 추정되는 ‘구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 Vetus=GeV)은 로마의 한 명의 성당(titulus)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구’(舊)라는 별칭을 붙이는 것은 ‘8세기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 VIIIi saeculi=GeVIII)과 구별하려는 것이다.

 

7-8세기에 교황청 미사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작성된 성사집도 있는데, ‘아드리아노 그레고리오 성사집’(Sacramentarium Gregorianum Hadrianum Authenticum=GrH)이다. 이 GrH를 기본으로 하고 본당 미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부록을 첨부한 것은 ‘파도바 그레고리오 성사집’(Sacramentarium Gregorianum Paduense=GrP)이다. 위에 언급한 GeVIIIGeVGrP에 갈리아와 수도회의 요소가 더해진 것이다.

 

10세기 이후의 성사집들은 GrPGeVIII가 혼합된 것인데, 이러한 성사집들을 ‘혼합 그레고리오 성사집’(Sacramentarii Gregoriani Mixti=GrM)이라고 부른다. 이 성사집들로부터 이어지는 후대의 양상은 매우 복잡하다.

 

통합 미사 경본

 

‘미사 경본’(Missale)이라는 용어는 중세부터 사용되었는데, 성사집이나 리벨루스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9세기 이후로는 이 용어가 기도문, 독서, 성가 등 미사에 사용되는 모든 전례문을 한 권에 모아 놓은 형태의 전례서를 가리킨다. 이러한 미사 경본을 ‘통합 미사 경본’(총 미사 경본; Missale Plenarium; Missale Completum)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모든 미사 전례문이 한 권으로 통합된 이유는 이러하다. 당시 사제 혼자서 바치는 미사가 흔해짐에 따라 사제 혼자서 미사의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낭송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큰 도시나 수도원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본당에서 사용할 미사 경본도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어느 한 부분도 빠짐없이 온전하게 미사를 바치려는 경향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통합 미사 경본의 형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유지되었다. 그 뒤로는 다시 미사 경본, 미사 독서, 미사 성가가 분리되었다.

 

비오 5세 성사집

 

미사 경본의 역사를 간략하게 묘사하자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의 대표적인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1570년에 비오 5세 교황이 반포한 것이다. 이후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인 1962년까지 수차례 개정되었지만 사소하게 수정되었고 그 기본 구조는 변함이 없으므로, 이러한 미사 경본들을 통칭하여 ‘비오 5세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개혁으로 1970년에 새 미사 경본이 나오기까지 400년간 사용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10세기 이후 GrM으로부터 비오 5세 성사집으로 이어지는 양상은 매우 복잡하지만, 주된 흐름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러하다. GrPGrM의 주된 유형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13세기 로마 교황청 미사 경본」(MCRXIII)이 나오며, 이것을 바탕으로 「1474년 로마 교황청 미사 경본」(MR1474)이 출판되었다. 비오 5세 교황은 큰 수정 없이 「1570년 로마 미사 경본」(MR1570)을 반포하였다.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미사 전례서의 역사는 복잡하고 다양한 혼합의 흐름을 보였다. 성당과 수도회에서는 교황청의 미사 경본을 사용하면서도, 합당한 원칙과 기준이 없이, 그때까지 존재하던 새 전례서와 옛 전례서를 나름대로 조합해 각각 자신들만의 고유한 미사 경본을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심한 혼란을 일으켰다. MR1570의 역사적 의의는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미사 전례문을 통일했다는 점이다.

 

바오로 6세 성사집

 

1800년대에 전례학이 태동한 이후 전례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라 당시의 전례를 개혁해야 할 필요성이 시급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학적인 수준을 넘어서 실천적인 수준에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이 1900년도 초에 일어난 ‘전례 운동’이다. 비오 12세 교황은 이 전례 운동을 냉철하게 비판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1947년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Mediator Dei)를 반포하였다. 다가올 보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이미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요한 23세 교황이 시작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바오로 6세 교황이 마무리 지었다. 비오 5세 미사 경본이 반포된 지 400년 만인 1970년에 전례 개혁의 결과가 반영된 로마 미사 경본의 첫째 판이 반포되니 이것을 ‘바오로 6세 로마 미사 경본 표준판’(MR1970)이라고 부른다. 전례 개혁의 결과가 어떻게 여기에 반영되었는지를 좁은 지면에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큰 특징 중 몇 가지만을 언급한다.

 

‘표준판’(Editio typica)이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사실에서 이제 이 라틴어 미사 경본을 표준으로 하여 미사 경본을 각 민족의 모국어로 번역할 것이 전제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전의 미사는 대부분의 신자가 잘 알지 못하는 라틴어로만 거행되었고, 따라서 신자 대부분은 기도문에 응답할 수 없었으며 성가를 부를 수도 없었다. 모든 전례문은 해당 직무자들이 바쳤고 라틴어로 된 성가는 성가대가 불렀으니, 신자들은 미사가 거행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전례가 거행될 때 신자들은 방관자로 머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구원의 은총에 젖어들어야 한다. 전례 중 모국어의 사용은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서 가장 먼저 논의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논제였다. 그 개혁의 결과 모국어의 사용이 허용되었다(전례 헌장, 36항 참조).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현존하시며 또한 성체와 성혈로 현존하신다. 이 두 현존은 성자의 단일한 위격에 결합되어 있는 같은 것으로서 어느 하나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말씀 전례에서 말씀으로 현존하시는 성자께서 선포되시고 그렇게 선포된 말씀을 성찬 전례에서 성체와 성혈의 현존으로 거행하는 것이다(미사 독서 목록 지침, 10항 참조). 이전의 미사 전례에서 성경 말씀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20%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제한적이었다. 이에 비해서 개혁된 미사 전례에서 성경 말씀은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말씀 전례에서는 맹목적인 연속보다는 주제 연결을 중시하는 ‘준연속적인 독서’(lectio semi-continua) 방식으로, 중요한 성경 말씀이 2년 또는 3년을 주기로 하여 모두 선포되도록 배정되었다(미사 독서 목록 지침, 64-77항 참조).

 

또한 신자들은 되도록 그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를 모시도록 권장되고, 신자들이 성체와 성혈을 함께 모시는 것이 허용되었다. 주교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사제가 공동으로 집전하는 미사의 형태가 오히려 더욱 장엄하고 그리스도의 단일한 사제직을 더 잘 드러내기에 이전에 금지되었던 공동 집전이 오히려 권장되었다.

 

표준판이 반포된 지 5년 뒤인 1975년에 그동안 발견된 개선해야 할 점들을 적용하여 ‘제2표준판’(Editio typica altera=MR1975)이 반포되었다. 제2표준판이 반포된 지 27년이 지난 2002년에 ‘제3표준판’(Editio typica tertia)이 반포되었다. 이 제3표준판은 거의 3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각 지역 교회에서 모국어로 미사 경본을 번역하면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아 수행하였던 수많은 ‘적응’(adaptatio)의 사례를 반영한 것이다. 교회 전통에서 본연의 신앙 고백문으로 바쳤던 사도 신경의 가치를 인정하여 이것을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에 사용할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신자들이 양형 영성체를 할 가능성을 확대하였다.

 

이미 일어났거나 예견된 ‘적응’ 외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적응’에 대해 주교회의가 판단하는 데 필요한 기준을 다루었다. 그리고 새로 생겨난 성인 축일들의 기도문들을 마련하였다. 한편, 악보가 있는 본문을 악보가 없는 본문보다 앞에 실어서 미사 경문 중 노래할 수 있는 부분은 노래하는 것이 더 장엄하고 또 장려됨을 부각했다.

 

이 제3표준판 미사 경본의 사소한 오류들을 수정하고 보충해야 할 점들을 적용하여 2008년에 ‘제3표준 수정판’(Editio typica tertia emendata)이 반포되었으니 이것이 현행 「로마 미사 경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반포된 미사 경본들은 모두 같은 기본 구조를 지니므로 ‘바오로 6세 성사집’이라고 통칭한다.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은 표준판을 번역하여 1975년에 출판되었으며, 1996년에 우리말 「미사 통상문」이 나왔다. 곧 새로 출판될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은 2008년의 제3표준 수정판을 번역한 것으로서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부터 시행된다. 1975년 이후로 42년 만에 개정되는 것이다.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말 번역문 자체의 변화를 살피기 전에, 제2표준판과 무려 27년의 터울을 지니는 제3표준판의 변화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 신호철 비오 -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부산교구 신부로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를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10월호, 신호철 비오]

 

 


 

 

[경향 돋보기 - 새로 나오는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새 「로마 미사 경본」에서 달라진 점들

 

 

 

 

새 「로마 미사 경본」의 발행 배경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 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변한 것은 자국어 미사 거행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7년부터 우리말로 미사를 거행하기 시작했고, 1975년에 우리말 첫 「미사 경본」을 발행하였다. 그리고 주교회의 1987년 추계 정기 총회의 결정에 따라 미사 통상문을 비롯해 모든 전례문과 예식서를 우리말 어법과 고유 예법에 맞게 개정하기로 하고, 1996년에 개정한 「미사 통상문」을 발행하였다.

 

이후에도 미사 경본의 개정 작업은 계속하여 라틴어판 최종본인 「로마 미사 경본」  제3표준판(2002년, 이하 제3판)과 그 제3표준 수정판(2008년, 이하 수정판)을 바탕으로 개정 작업을 완료하고, 2017년 2월 21일 사도좌의 추인을 받아 새롭게 「로마 미사 경본」을 펴내게 되었다. 이 미사 경본은 한국어 제3판으로 다가오는 12월 3일 대림 제1주일부터 사용한다. 참고로 라틴어 수정판은 제3판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이기에,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미사 경본의 기본은 2002년에 발행된 제3판으로 보면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라틴어판 최종본인 「로마 미사 경본」 제3판과 그 수정판 전체를 번역한 미사 경본은 갖지 못하고, 미사 봉헌에 필수적인 부분과 그 외에도 필요에 따라 「미사 경본 총지침」 등을 부분적으로 번역하여 소책자로만 활용해 왔다.

 

이번에 발행되는 한국어판 미사 경본은 라틴어판의 완전한 번역으로서, 원본에 있는 악보도 그대로 실어 본연의 의미의 ‘노래 미사’(Missa Cantata)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보통 ‘창 미사’라고 하는 노래 미사는 ‘대영광송’과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린양’ 등을 노래로 바치는 미사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노래 미사는 본디 미사 시작의 성호경부터 사제와 신자의 인사 그리고 감사송 등 미사 경문의 많은 부분을 노래로 바치도록 되어 있고, 이번에 이 모든 악보를 함께 실은 것이다.

 

한편 1975년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지속적인 전례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이를 반영한 여러 예식서가 발행되었다. 여기에는 전례 예식에 관한 최근의 사도좌 문헌들과 개정된 「교회법전」(1983년)을 반영하였다. 또한 여러 지역 교회에서 라틴어 미사 경본 제2표준판을 번역하여 사도좌의 추인을 받아 사용하는 과정에서 지역 교회의 개별적인 적응들을 더하고 고치는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

 

이번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위의 적응들을 반영한 라틴어 「로마 미사 경본」 제3판과 그 수정판 전체를 번역하여 라틴어 경본과 온전히 같은 형태의 우리말 미사 경본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한국 교회의 특수성에 비추어 적응해야 할 부분에 대하여 사도좌의 추인을 얻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새 「로마 미사 경본」의 특징

 

한국 교회에서 이번 「로마 미사 경본」의 발행으로 미사 거행 방식이 많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대적인 전례 개혁이 이루어지고 자국어로 미사를 드리면서 전례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심화되고 정착되어 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문화에 적응해야 할 부분에 대한 논의가 지난 30-40년간 지속되어 왔다.

 

이 긴 과정의 결실이 라틴어 「로마 미사 경본」 제3판과 수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교회는 이 원본을 충실히 번역하면서 우리 교회와 문화에 적응해야 할 부분을 논의하고 사도좌의 추인을 얻어 새 「로마 미사 경본」을 발행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볼 때 이번에 발행되는 미사 경본은 앞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사용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미사 거행에서 달라지는 일부 시행들을 살펴보기 전에 한국어 미사 경본의 원문이 되는 라틴어 미사 경본 제3판의 특징 몇 가지를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1) 미사의 교회론적인 차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사제가 혼자 드리는 미사가 첫자리에 있었다. 이것은 트리엔트 공의회 직후(1570년)반포된 지침에 따른 것으로, 유럽의 오래된 성당에서 양쪽 벽을 따라 작은 제대가 여러 개 있는 것도 사제들이 혼자 미사를 드리도록 한 것이었다.

 

이와 달리 제3판은 미사 전례의 교회론적이고 공동체적 차원을 강조하여 사제가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를 성찬례의 전형적인 형태로 제시하였다( 「미사 경본 총지침」, 115항 이하 참조). 그뿐 아니라 특히 지역교회에서 주교가 사제단, 부제들 그리고 봉사자들에게 둘러싸여 하느님 백성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를 첫자리에 두었다(전례 헌장 41항; 「미사 경본 총지침」, 112항 참조).

 

2) 「미사 경본 총지침」 제9장은 이전 경본에 새롭게 추가된 부분이다. 여기에서 각 지역 교회는 로마 전례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역 교회 주교들이 사목적 필요에 알맞게 미사 경본에 제시되지 않은 적응들을 마련하는 길을 열어 두었다.

 

3) 이전에는 신앙 고백문으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주로 사용해 왔는데, 제3판에서 사도 신경을 폭넓게 특히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에 바칠 수 있도록 명시하였다. 신학적으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더 완전하기는 하지만, 사도 신경도 신앙의 핵심을 잘 표현한 것으로 초세기 교회로부터 물려받은 교회의 소중한 유산이다. 사도 신경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보다 더 오래되었고, 또한 동·서방 교회가 공유하는 신앙 고백문이다.

 

4) 전례 시기에 알맞고 한층 더 풍요롭게 완전한 전례문을 제시하였다. 이전에는 대림 시기 평일에 사용하는 몇 개의 기도문만을 제시하였는데, 대림 시기의 모든 평일에 고유한 기도문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부활 시기에 부활 팔일 축제의 기도문을 반복하여 사용하던 이전과는 달리 부활 시기의 모든 날에 옛 성사집에서 가져온 고유 기도문을 수록하였다. 또한 1975년 이후 보편 전례력에 들어온 새로운 축제일 거행을 위한 전례문들을 넣었고, 성모 마리아 공경을 촉진하고자 새로 미사 전례문을 만들어 복되신 동정 마리아 공통 미사를 풍부하게 하였다.

 

5) 그레고리오 성가 악보를 부록이 아니라 통상문과 고유 기도문의 해당 자리에 배치하여 주일이나 대축일 등에 온전한 노래 미사를 거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새 「로마 미사 경본」 의 발행으로 성찬례 거행에서 달라지는 예식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재 우리가 행하는 미사 거행 양식이 이번 우리말 미사 경본 발행으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 주교회의는 새 미사 경본을 준비하면서 라틴어 원문에 더욱 충실한 번역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몇 가지 변화가 따르게 되었다.

 

1) 사제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와 같은 인사에 교우들의 응답이 ‘또한 사제와 함께.’에서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로 바뀐다. 본디 라틴어 본문은 ‘Et cum spiritu tuo’(또한 너[당신]의 영과 함께)인데, 경신성사성과 논의한 끝에 우리말의 어법을 고려하여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로 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전에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할 때 빠진 ‘영’을 삽입한 것이다. 사제와 교우들의 이 인사말에서 사제는 성찬례에 참여한 교우들에게 축복의 말을 건넨다. 이 인사는 바오로 사도가 지역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그 서두에 했던 인사말을 미사 서두에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사제의 인사에 대한 교우들의 응답에서 라틴어 본문의 ‘영’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그것은 제단에 오른 사제는 그리스도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고, 이 직무는 사제 서품으로 사제의 영에 인호로 새겨진 것이기에,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이제 막 영적인 직무를 수행하려는 사제의 영에 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 성찬 기도의 성혈 축성 기도에서 ‘모든 이를 위하여 바칠 피다.’에서 ‘모든’이 라틴어 본문에 따라 ‘많은’으로 바뀐다. 본디 「성경」에도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 마르 14,24)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전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지역 교회에서 예수님의 속죄 제물의 보편성을 강조하려고 이 말씀을 ‘모든’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이번에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 그대로 번역하고, 그 의미를 알아듣는 것은 늘 열려 있게 한다는 사도좌의 뜻을 지역 교회들이 받아들여 라틴어 본문대로 수정하였다.

 

3) 영성체 전에 사제가 교우들을 향해 성체를 들어 보이며 건네는 일종의 외침에서 ‘하느님의 어린양’ 앞에 ‘보라!’를 넣는다. 우리 교회에서도 이전에는 ‘보라!’가 들어 있었는데 우리말 어법에 관한 논의에서 삭제했다가 이번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부분은 요한 복음 1,29에서 온 말씀으로서 성경 그대로, 그리고 라틴어 본문의 ‘Ecce’를 그대로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전례력에서 조정된 부분들

 

그동안 우리나라 전례 거행은 대체로 보편 전례력을 따르면서도 전교 지역으로서, 그리고 우리 교회 역사의 특성을 감안하여 수행해 온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편 전례력에 맞추어 전례일 명칭과 등급, 시행 방법 등을 조정하였다.

 

1) 모든 전례일의 명칭을 라틴어 경본 그대로 번역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에 따라 삼위일체 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등 앞에 ‘지극히 거룩하신’이 붙는다. 그리고 그리스도 왕 대축일 앞에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가 붙고, 위령의 날 앞에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이 붙는다. 또한 라틴어 본문에 따라 예수 성탄 대축일이 ‘주님 성탄 대축일’로, 예수 부활 대축일이 ‘주님 부활 대축일’로 명칭이 변경된다. 그리고 동정 마리아에 붙는 형용사 표현 ‘복되신’ 또한 라틴어 본문대로 넣는다.

 

2)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서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라는 명칭은 삭제하고 ‘복되신’을 넣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로 수정한다.

 

3)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기념일과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선교의 수호자)기념일에서 ‘선교의 수호자’ 명칭을 삭제한다. 그리고 이 두 날은 그동안 대축일로 지냈으나 보편 전례력을 따라 기념일로 변경한다.

 

4) 우리나라 고유의 전례 거행에 관련한 것은 다음과 같다.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은 신심 미사로 거행한다. 이는 같은 성인에 대하여 두 번의 기념일을 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르는 것으로, 한국 교회에서는 9월 20일에 대축일로 거행하고 있다.

 

새해를 시작하는 때(음력 1월 1일)에 기원 미사 예식 규정에 따라 ‘설’ 명절 전례를 거행한다. 설 명절이 사순 시기 주일이나 재의 수요일과 겹치면 보편 전례력에 따른 미사 전례문으로 미사를 드린다. 설 명절 미사는 흰색 제의를 입고 드린다.

 

추석(음력 8월 15일)은 기원 미사 예식 규정에 따라 ‘한가위’ 명절 전례를 거행한다. 한가위 명절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과 겹칠 때에는 대축일 미사를 드린다. 한가위 명절 미사도 설 명절 미사 때처럼 흰색 제의를 입고 드린다.

 

6월 25일에 기원 미사 예식 규정에 따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원 미사를 드린다. 이날 미사에는 흰색 제의를 입는다.

 

이외에 전례 거행 또는 전례력에 관한 작은 변화도 많이 있으나 미사 경본에 자세히 실려 있기에 여기에서는 이 정도의 중요 사항만을 소개한다.

 

새 「로마 미사 경본」의 발행에 이은 각종 전례서의 발행

 

새 「로마 미사 경본」의 발행에 이어, 이제 이 미사 경본과 통일한 예식서들도 모두 사도좌의 추인을 받아 2-3년 안에 새로 나오게 된다. 이 전례서들은 다음과 같다.

 

「혼인 예식」, 「장례 예식」, 「병자성사 예식」, 「유아 세례 예식」, 「어른 입교 예식」, 「견진 예식」, 「서품 예식」, 「수도 서원 예식」, 「고해성사 예식」, 「성당과 제대 봉헌 예식」, 「미사 밖에서 하는 영성체와 성체 신비 공경 예식」, 「성유 축성 예식」, 「독서직과 시종직 수여 예식」, 「비정규 성체 분배 직무 수여 등을 위한 예식」, 「동정녀 봉헌 예식」,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화상 대관 예식」, 「대수도원장 축복 예식」, 「축복 예식」, 「구마 예식」, 「주교 예절서」.

 

이 밖에도 「로마 미사 경본」의 발행에 따라 개정되는 「가톨릭 기도서」도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은 뒤 출간할 예정이다.

 

새로운 우리말 미사 경본의 발간으로 미사 거행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제 온전한 형태의 미사 경본을 갖게 되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번 우리말 경본은 라틴어 경본을 더욱 충실하게 번역하면서, 보편 전례력에 맞는 가운데 우리 고유의 전례 거행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이 우리말 경본 출판이 우리나라에서 전례 거행이 보편성을 띠면서도 토착화를 발전시켜 가는 또 하나의 시작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 대전교구 보좌 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10월호,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경향 돋보기 - 새로 나오는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왜 전례서 중의 전례서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정신에 따라서 쇄신된 모든 전례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례서는 당연히 ‘미사 경본’일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을 이루는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고 현존하게 하는 성찬례 거행을 위한 전례서이기 때문이다.

 

미사 경본은 본디 고대 성사집, 곧 예식 거행을 집전하는 주교나 사제가 바쳐야 할 기도문을 담고 있었던 전례서에서 비롯하였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 발행된 미사 경본의 다양한 표준판들은 교회 생활에서 성찬례가 차지하는 특별한 중요성을 나타내는 명확한 표지였다. 각 미사 경본은 그 시대의 특별한 요구에 따라서 성찬 신비의 거행을 질적으로 풍요롭게 했던 변화와 적응, 수용을 담고 있다.

 

다른 한편, 로마 예식의 ‘본질적인 일치’라고 불린 것, 곧 교회의 오랜 전통의 증언으로서 바뀌지 않고 남아 있어야 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언제나 보존하고자 했다. 사실 미사 경본은 다른 전례서들과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법은 믿는 법을 세운다.”, “기도하는 대로 믿는다.”는 격언의 가르침처럼 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을 표현한다.

 

새 「로마 미사 경본」(제3표준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지속된 전례의 쇄신과 적응을 위한 오랜 노고의 산물이다. 이 미사 경본에 실린 다양한 전례문은 대부분 교회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한 것으로, 기도하는 교회의 삶 자체를 담고 있다.

 

다가오는 대림 제1주일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될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과 함께 「미사 독서」와 「복음집」은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사용해 온 「미사 통상문」을 비롯하여 다달이 발간되는 「매일미사」와 주례자용 「매일 미사 고유 기도문」을 대체할 것이다. 우리말 새 미사 전례서들의 발행은 단순히 전례서의 모국어 번역의 의미를 넘어 미사의 풍요로운 거행 방식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리라 기대한다.

 

이 지면을 통해서 우리말 미사 전례서들의 발행의 의미와 함께 몇 가지 성찰해 볼 주제에 대해서 나누어 보고자 한다.

 

미사 전례서의 풍요로운 표징에 대한 존중

 

“전례서들은 전례 행위에서 실제로 천상 실재를 드러내는 표지와 상징이 되어야 하며 나아가 참된 품위와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지녀야 한다”( 「미사 경본 총치침」, 349항).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큰 신비인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는 데 알맞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거룩한 표지와 상징들에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왔다. 올바른 전례 거행을 위한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자 기본적인 요소는 바로 품위 있는 전례서의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을 비롯한 「미사 독서」와 「복음집」의 발행으로 한국 천주교회도 비로소 성찬례 거행을 위한 온전한 형태의 품위 있는 전례서들을 갖게 된 것이다. 1975년에 발행된 우리말 첫 「미사 경본」은 1996년에 「미사 통상문」을 개정함과 동시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니, 무려 20여 년 만에 맞이하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신자들은 「미사 통상문」에서 번역상 바뀐 일부 표현에 대한 적응 외에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사제들은 단지 거행의 편의를 위해 「미사 통상문」과 함께 「매일미사」와 주례자용 「매일 미사 고유 기도문」의 사용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전례서의 발행이 기존의 미사 거행에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례에서 사용되는 모든 사물의 거룩한 상징성을 생각할 때 전례서 자체의 가치와 중요성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이 전례서들은 하느님 백성이 이천 년 넘은 역사에서 체험한 신앙을 보존하고 표현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성사」, 40항 참조).

 

마찬가지로 「미사 독서」와 「복음집」은 전례 안에서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특별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 전례서들은 봉사자, 행위, 장소, 다른 요소들과 어울려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표지이다( 「미사 독서 목록 지침」, 35항 참조).

 

교회는 미사 거행에서 특히 「복음집」을 「미사 독서」와 구분하여 아름답게 장식함으로써 각별한 공경을 표현해 왔다. 입맞춤과 분향, 높이 들어 올림, 또는 촛불과 향로를 든 행렬 등처럼 미사 거행에서 「복음집」에 공경을 드리는 모든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을 언제나 주님의 몸처럼 공경해 왔듯이,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거행하는 올바른 규범과 내용을 담고 있는 미사 전례서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 활용을 적극 독려해야 할 것이다.

 

전례서에서 풍요로운 전례 거행으로

 

전례서의 본문은 전례가 거행될 때 비로소 하느님의 구원 신비에 우리를 참여시키는 행위이자 사건이 된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모든 전례 거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구원 신비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거행 자체가 하느님의 주도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사제가 축성할 때 하느님께서 몸소 축성하시는 것이고, 독서자가 성경을 선포할 때 하느님께서 몸소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찬례는 본질적으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께 다가가게 하는 하느님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 기본 구조는 우리 마음대로 바꾸거나 최신 경향에 얽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성사」, 37항 참조). 교회의 살아 있는 전승을 담고 있는 성찬례는 전례 규범의 내용과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할 때 올바로 거행될 수 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거행 방식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전례 거행에서 어떤 인위적이고 부적절한 것을 추가하는 것을 우려하시며, 전례 거행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성직자들(주교, 사제, 부제들)의 특별한 책임을 상기시키셨다. “예식의 특정한 구조에 주의를 기울여 충실히 따르는 일은 선물인 성찬례의 본질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제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랑의 성사」, 40항).

 

따라서 성찬례의 거행 방식에 대한 특별한 의무를 부여받은 사목자들이 우선적으로 현 전례서들이 제시하는 규범을 알리고, 「미사 경본 총지침」과 「미사 독서 목록」에 나오는 풍부한 내용을 활용하도록 사목적 관심과 노력을 더욱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전례 거행에서 자주 지적되었던 예규 중심이나 형식주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례 안에서 본질적으로 드러나야 할 하느님의 신비에 신앙 공동체를 능동적으로 참여시키려는 올바른 거행 방식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는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 제시하는 다음과 같은 지침이 얼마나 자주 소홀히 다루어져 왔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제는 미사를 준비할 때 자신의 취향보다는 하느님 백성의 영신적 공동선을 먼저 고려하여야 한다. 미사의 각 부분을 고를 때에도 거행 중에 특정 임무를 수행할 사람들과 협의하고 또한 신자들에게 직접 관련되는 부분은 반드시 그들과 협의하여야 한다. 미사의 각 부분은 다양하게 고를 수 있으므로, 거행에 앞서 부제, 독서자, 시편 담당자, 선창자, 해설자, 성가대는 각자 자기와 관련된 부분에서 쓰이는 본문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결코 즉흥에 따르지 말아야 한다”(352항).

 

이 지침은 미사 거행을 위한 준비의 중요성을 분명히 말해 준다. 여기서 말하는 준비란 마치 어떤 공연을 다루듯이 예식 진행의 효율성과 완벽함의 요구에 응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례는 결코 어떤 완벽한 작품이나 공연을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생산적인 활동처럼 거행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 전례 거행은 기쁨이나 감동도 체험할 수 없는 노동 행위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거기서 주례자인 사제는 완벽한 공연을 위해 미사 내내 틀린 부분을 찾아내려고 두 눈을 부릅뜬 감시자의 모습으로도 비칠 수 있고, 즉흥적인 성가 지도자와 오르간 반주자는 그들의 좋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미의 노래에 공동체를 참여시키지 못할 것이다. 완벽한 성가대라도 미사 거행을 위해 모인 회중의 존재를 모른다면 단지 어떤 좋은 음악회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준비되지 않은 즉흥적인 독서자는 신자들에게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의 그 풍부한 의미를 깨닫도록 이끌지 못하고,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매일미사」 책이나 주보와 같은 인쇄물을 뒤적이는 데 더 열중할 것이다.

 

예식의 조화로운 준비와 실행은 성찬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마음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이다. 잘 준비된 미사 전례는 거행되는 신비에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행위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도록 신자들을 준비시킨다. 이것이 바로 미사 준비의 목적으로 제시된 ‘하느님 백성의 영신적 공동선’이 뜻하는 바일 것이다.

 

전례의 아름다움 : 성찬례가 교회를 만든다

 

어떻게 신앙과 삶의 일치 안에서 미사를 아름답게 거행할 수 있을까? 전례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이와 같은 물음은 앞서 언급한 올바른 거행 방식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어떤 교회 공동체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더 근본적인 과제를 떠올리게 한다. 신앙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공동체 없이, 삶 속에서 신앙을 증언하는 공동체 없이 전례는 결코 아름답게 거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금’ 미사를 거행하는 우리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전례 거행 자체에 쏟는 온갖 노력과 관심은 언제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의 관계 속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례, 특히 성찬례 거행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여정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십자가 사건으로 절망에 빠진 제자들이 주님 말씀의 빛으로 마음이 뜨거워져 삶의 의미를 되찾고, 빵을 쪼갤 때 주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함으로써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용감한 사도로 변화된다. ‘말씀’, ‘성찬’, ‘삶’으로 이어지는 이 점진적인 여정 속에서 전례의 거룩한 표지와 상징의 놀라운 힘과 뜻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우리도 미사 안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느꼈던 뜨거운 감동과 기쁨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세상 속에 파견되어 선포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회의 본질인 선교하는 교회의 역동적인 모습 안에서 교회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찬례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보셨다. 전례의 아름다움은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한 공동체의 복음화 활동의 열매와도 같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압니다. 또 작은 승리를 거둘 때마다, 곧 복음화의 활동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기뻐하며 경축합니다. 기쁨에 찬 복음화는 우리 일상의 요구 안에서 선을 키우며 전례 안에서 아름다움이 됩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교회는 복음화하고 복음화됩니다. 전례는 또한 복음화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 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입니다”( 「복음의 기쁨」, 24항).

 


 

* 김기태 사도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10월호, 김기태 사도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