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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지아 시인 / P도시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20.

P도시

이지아 시인

 

 

새로운 도시가 발견되고 인류가 생명을 연장한다면, 그녀는 구석에서 노끈을 자른다.

김이 나가고 차가워진 일이다

 

이를테면 스프링이 나타나고, 그녀는 아픈 국가를 잊어버린 채 탕을 끓인다.

손님들이 먹다 남긴 뼈를 우려내면서 회전문은 두통을 모르고 냉동차는 안개를 품고 도착한다

 

버스나 건물을

그대로 두면서 닭이 끓고 있다

 

차가운 물이

수증기가 되고

고기가 고기를 찾는

초현실의 순간

 

눈이 오고 눈이 오지 않는 요일에도

문, 거기엔 계속 닿고 싶은 빛이 들어가고, 우크라이나 국가의 주변에서, 새벽이라고 부르는 살코기의 국적 없는 망명들

 

끝내야 하는 것은

뜨거운 물에 불린 닭털이다

하얗고 조용한 증발이다

 

첫 관계를 배울 때, 육신의 연한 조직은 털이 많은 짐승에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언젠가 울타리 밖에서 서성대던 감시자, 이를테면 스프링이 휘어지고, 사고는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주인은 남은 것을 정리하라며 그녀에게 할 일을 준다

 

오늘은 질긴 껍질의 줄거리를 풀어본다

노끈을 자르면, 냉동 닭이 가득 찬 박스가 열리고, 골목이 열리고, 화재 경보음이 울리고

 

질퍽이는 냉동 닭을 끌어안고 강서지점 간판 밑에 서 있다

 

환영같이

티브이는 내용 안에서 움직일 테고

흑인 목사는 들리지 않는 영어예배를 몇 년간 주도하겠지

 

 

그녀는 잘라진 노끈을 처음처럼 연결한다. 소금보다 고운 첫눈이, 저런 건 틀어진 살들의 노래일거야

 

 

피로하다 라는 말은 한국말로 무엇이지

그녀는 천장 꼭대기에 매달려 있다

흔들리는 스프링

 

이를테면 녹슨 도시가 튕겨져 나가고

날이 풀리면

눈이 녹고, 창문에 두드러기가 붙으면, 액체가 꿈틀대고, 도시의 암벽에는 실외기가 매달려 있다

 

우리는 능글맞게 순진하게

불이라는 후예를 전해주며

 

고기는 고기를 피하고, 서로에게 무뎌지지. 도시는 긴 팔을 꺼내 서로에게 묶인 뒷목을 끊어주려고

여린 미래부터

팽글팽글 돌리고 있는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이지아 시인

본명 이현정. 서울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2015년 계간지《쿨투라》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