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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지훈 시인 / 쌤소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12.

쌤소

임지훈 시인

 

 

쌤소가 굴러간다. 삐뚜름하게 굴러간다. 가지 않으려는듯 굴러간다. 의지박약으로 굴러간다. 적재의 볼록한 기억도 따라간다. 바퀴는 휘어져 팔자를 그리면서 구르고 있다. 김포공항을

 

힘에 부쳐 나이트가 튕겨나간 쌤소

 

쌤소만 굴러간다. 광고판 속의 쌤소나이트는 조명과 끈적하게 버무려져 구르고 있다. 매끈하게 속에 아무 것도 품지 않은 게 분명해 보이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굴러간다. CG의 열병식 같이 굴러간다. 누가 검열하는지도 모르고

 

쌤소가 굴러가다 우체통에 부딪힌다. 편지가 한쪽으로 쏠린다. 홋카이도로 가는 직항이 김포엔 없다. 빛을 닮은 아침이 굴러와 쏟아지면 키가 넘는 설국으로 가는 편지는 드론이 실어 나르는 것일까. 눈 속을 굴러가는 쌤소에 담겨 가는 것일까.

 

우체통에 막힌 쌤소를 발리구두가 다가와 앞코로 민다. 물 같은 공기 같은 마음이 고였을 때 카르마처럼 무심하게 다가와 툭 찬다. 쌤소는 방향이 열린 대로 굴러간다. 어깨로 휴지통을 밀고 굴러간다. 쌤소가 놓쳐버린 손이 펄럭거린다. 오늘속으로 부는 바람을 떼버리고 유통기한도 함께 굴러간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임지훈 시인

동아대 졸업. 2006년《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미수금에 대한 반가사유』가 있음, 동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