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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달자 시인 / 발 1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 19.

신달자 시인 / 발 1

 

 

기성화(旣成靴)를 샀다.

누굴 위해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것에

순응하는

 

누구를 위해 마련된지도 모르는 길을

나의 집도 아닌

집으로

익숙하게 돌아가는

 

스스로를

헌신(獻身)하여

상실(喪失)되는

회수(回收)할 길 없는 흔적을 남기며

 

나의 방(房)도 아닌

안개서린 숲으로

고단한 몸을 옮기는

 

언제나 그것은 전진(前進)하나

차단된 상황(狀況)에

허무의 거미줄을 친다.

부단(不斷)히 치면서 그 줄 위를 걷는

 

지나간 시간(時間)의 흔적을 밟으며

집에 이르면

한평짜리 현관옆에

언제쯤 결별(訣別)할 지도 모르는

신발을

 

소중하게 벗어놓는

숙명(宿命)의

 

그것은

봉사의 섭리(攝理)로

어느 곳이든

말없이 질주(疾走)한다.

 

봉헌문자, 현대문학사, 1973

 

 


 

 

신달자 시인 / 발 5

 

 

줄 위를 걷는다.

발 끝에 열리는

탐색의 눈

 

줄이 흔들린다.

불을 켜도 안보이는

당신의 부재

오늘의 물가고에

한발을 헛딛는

어두운 시력

팽팽하게 긴장된

줄 위에서

균형을 잃어가는

춤추는 발

 

발이 저려온다.

한 발자욱도 뗄 수 없이

저려오는

이 순간의 불구(不具)

 

미흡한 예감을 따라 걸으며

균형을 잡아보는

정신(精神)의 발

 

줄 위를 걷는다.

뛰어 내릴 수 없는

이 부재 속의

공존.

 

餠ï 축제, 조광출판사, 1976

 

 


 

신달자(愼達子, 1943~ ) 시인

경남 거창에서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72년 《현대문학》을 통해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봉헌문자』, 『겨울축제』, 『모순의 방』,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아가』, 『아버지의 빛』 등과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외에 산문집 『백치애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등이 있음. 1964년 여상 신인여류문학상,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1998년 '향문화대상, 2001년 시와 시학상, 2004년 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