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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김수환 추기경 사연 공모전 수상작] 박 변호사, 밥 한 끼 합시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

[김수환 추기경 사연 공모전 수상작]

박 변호사, 밥 한 끼 합시다(특별상)

박원순(서울시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2.24 발행 [1503호]

 

 

“박 변호사, 밥 한 끼 합시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서거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앉아 눈물을 쏟다가 명동대성당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많은 시민과 만났습니다. 전국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 조문하고자 모인 사람들로 명동 일대는 마비가 될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조문객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분의 삶을 추모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놀랍기만 합니다.

 

투명한 유리관에 누워 계셨던 추기경님은 생전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제 손을 잡아주시며 “박 변호사, 밥 한 끼 합시다”라고 말씀하실 것 같았습니다.

 

저는 추기경님과의 추억이 참으로 많습니다.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로 추기경님께 어려운 부탁도 여러 차례 드렸는데, 흔쾌히 들어주셨고, 더 도울 방법은 없는지도 세심하게 챙겨 주셨습니다. 부천 성고문 사건의 변호사로 일할 때 동료들과 함께 명동대성당을 찾아가 추기경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그리고 추기경님께 진실을 자세히 설명해 드리고 사건의 희생자로 감옥에 갇혀 있던 권양을 위로하는 글을 써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추기경님은 우편엽서에 위로와 희망의 글을 써주셨습니다. 그 엽서는 권양에게는 위로를 주었고 우리 사회에는 정의를 알렸습니다.

 

또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어느 날, 저는 인권변호사 20여 명과 함께 명동대성당 옆 수녀회 건물 지하 식당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곳이 초대 교회의 카타콤베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숨어 지내던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이자 피신처이자 무덤이었던 카타콤베! 수녀님들께서는 여러 맛있는 음식과 지금도 잊히지 않는 직접 담근 향긋한 포도주를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참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포도주를 마시며 진솔한 이야기들로 유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양심수들을 위해 변론하던 변호사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응원해주셨던 추기경님의 따뜻한 마음이 그립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신 지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좋아진 것도 많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막막하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추기경님 생각이 납니다. 더럽고 무거운 것도 담아내는 옹기처럼 많은 것을 포용하고, 자기 이익만 따지지 말고 바보처럼 나누고 내어 주라고 하셨던 추기경님과 오늘은 문득 따뜻한 차 한잔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