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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김수환 추기경 사연 공모전 수상작] 추기경님은 다단계 우두머리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3.

[김수환 추기경 사연 공모전 수상작]

추기경님은 다단계 우두머리

이옥정 콘세크라타(막달레나 공동체 전 대표)

가톨릭평화신문 2019.02.24 발행 [1503호]

 

 

 

 

1988년 정월 대보름에 허름한 옷차림으로 추기경님께서 막달레나의 집을 방문하셨다. 우리가 초대한 손님들은 신자가 아닌 용산역 부근의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추기경님께 세배했는데 추기경님께서는 5000원권 새 돈을 세뱃돈으로 주셨다. 그중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온 친구가 “추기경님, 어떻게 어른이나 아이에게 똑같이 주시는 거예요? 어른은 좀 더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자, “나에게는 모두가 다 어린이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11살이었던 초등학생 아이가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지난해 11월 19일 ‘라파엘’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공군으로 복무하고 무난히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건강하게 잘 다니던 그 아이가 10년 전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뇌병변 진단을 받았다. 그의 부모는 요양원에서 투병 중인 아들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병문안마저 거절했었다.

 

6개월밖에 못 산다는 아이한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아들을 보여주는 것조차 꺼리던 그의 엄마에게 내가 갖고 있던 묵주를 주면서 “추기경님 묵주이니 떨어지지 않게 그 애 손에 잘 쥐어주라”고 하면서 “만일 세상 떠나도 이 묵주를 꼭 갖고 가게 하라”고 했다.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그 묵주만 들고 가면 예수님 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었다. 그게 10년 전이다.

 

김 추기경님께 부탁하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6개월밖에 못 산다는 그 애는 비록 말도 못 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요양원에서 퇴원해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을 만큼 호전이 되었다. 김 추기경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던 그의 부모는 작년에 세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벽에 써놓은 주모경과 사도신경,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님 사진을 눈으로만 바라보던 42세지만 4살 어린 아이처럼 살던 그 아이도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세례를 받았다. 그날 참석한 모든 사람은 세례식 내내 훌쩍거렸고 부모님은 감격에 겨워 아들을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그동안 그 애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며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을 했다. 그 애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저 해맑게 웃기만 하는 모습에 그 아이 마음속엔 이미 예수님이 와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세례식 동안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추기경님께 감사인사만 드렸다. “감사합니다, 추기경님! 고맙습니다, 추기경님!”

 

김 추기경님 영향으로 세례받은 사람이 어디 라파엘네 가족뿐이랴. 우리 막달레나공동체가 활동하던 용산역 현장 여성들은 세례를 받으면서 소감을 물을 때면 하나같이 추기경님과의 추억을 말했다. 김 추기경님을 직접 만났던 친구들이든 만나진 못했어도 동료들한테 전설처럼 들었던 친구든 그들은 추기경님과의 만남과 차별 없이 나눠주시던 세뱃돈과 묵주 때문에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방 한가운데엔 십자고상과 김 추기경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김 추기경님의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그렇게 하나둘씩 세례를 받게 했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나는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50여 명이나 되는 대녀를 두게 되었다. 나의 대녀들은 성실한 신앙인으로서 곳곳에서 예수님 사랑을 전파하는 막달레나 성녀를 닮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 역시 나처럼 입교시킨 이들의 대모가 되었고, 나의 대녀의 대녀들은 나에게 ‘성당 할머니’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제 김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신 지 10주기가 다가온다. 동시에 정월 대보름도 함께 다가온다. 막달레나의 집에 오실 때마다 정월 대보름을 택해 오셨던 추기경님. 선종 5주기든 몇 주기든 상관없이 우린 해마다 대보름이면 모여서 김 추기경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그리곤 깔깔거린다. “추기경님은 다단계 우두머리 같다고.” 나의 대녀들이 대모를 서고 또 그 대녀들이 다시 대모를 서게 되는 일이 이어지게 되니 말이다.

 

내년엔 김 추기경님의 다단계 사업이 더 번창하기를 바라면서…. 김 추기경님께서 뿌리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의 씨앗은 성매매 현장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