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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수영 시인 / 사령(死靈)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8.

김수영 시인 / 사령(死靈)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달나라의 장난>(1959)-

 


 

김수영 [金洙暎, 1921. 11. 27 ~ 1968. 6. 16] 시인

1921년 서울 종로에서 출생. 1946년 연희전문 영문과에 편입하였으나 중퇴. 1946년 《예술부락[藝術部落]》에 시 <廟庭(묘정)의 노래>를 실으면서 작품 활동 시작. 1959년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 출간.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고, 시와 시론, 시평 등을 잡지, 신문 등에 발표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였으나, 1968년 6월 15일 밤 교통사고로 사망.

사후 시선집 『거대한 뿌리』(1974) , 『사랑의 변주곡』(1988) 과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등과 1981년 『김수영전집』 간행됨. 2001년 10월 20일 금관 문화훈장 추서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