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 사령(死靈)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달나라의 장난>(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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