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우 시인 / 비
파초 숨가쁜 잎에 뚝뚝 비 듣는 소리
간절한 은혜를 다투어 순(筍)들이 일어나고
년사(年事)를 근심턴 늙은이 창(窓)을 열고 듣는다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비원(悲願)
저녁 노을 속에 첨탑(尖塔) 끝 치솟은 십자(十字)
천심(天心)은 겨눌수록 너무나 허공(虛空)인가
비원(悲願)은 절규(絶叫)를 견디어 기(旗)빨보다 아파라.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산 샘
가을 산(山)빛이 고이도 잠긴 산 샘
나무잎 잔을 지어 한 모금 마시고는
무언가 범(犯)한 듯하여 다시 하지 못하다.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술
임이 달리하곤 나를 미쳤다니 외로 남은 몸이 잠자코 더불은 술 이제는 임 도루 불러도 내 못 갈까 하도다.
광자(狂者)는 천지총아야(天之寵兒也) 아암 천지총아(天之寵兒)지 하늘과 땅이 마구 물결을 치는구나 내 언제 풍선(風船)이 됐길래 둥 둥 이렇게 좋냐.
젊은 외롬에 겨워 석가(釋迦)는 산(山)으로 가고 붉은 목숨의 호사로 기독(基督)은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인생(人生)은 그렇게도 청춘(靑春)이 누려보고 싶은 건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는 그저 납빛 안개 광음(光陰)도 범(犯)하지 못하는 무중력층(無重力層)에 나는 있다 진실로 이 꿈 아닌 꿈아 다 하도록 깨지 말라.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오월(五月)
5월(月) 아침비에 부풀은 산(山)과 들을 넉넉한 세월처럼 부드러운 낙동강(洛東江) 사람도 배도 물새도 숨을 함께 했도다.
한철 풍경(風景)이긴 너무나 간절한 정(情) 부듯이 가슴이 메이며 핏줄이 더워진다 내 어이 어디로 가지랴 아아 나의 조국(祖國).
눈을 감아 본다 아득히 그 새벽을 새로운 하늘을 찾아 푸른 목숨들이 이 터에 자리를 잡고 복을 빌던 그 모습.
얼마나 어여쁜가 이 날을 사는 몸이 무한한 이 은혜 속에 자손(子孫)들을 심으면서 우리 턱 기대어 살자꾸나 사랑하는 사람아.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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