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우 시인 / 청추(聽秋)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싫단 말 다신 않을래 이 밤도 또 밤새워 우는 저 가을벌레들 소리 더구나 우수수 잎들이 지면 어이 견딜가본가
늘어난 나이의 부피로 잠은 밀려 갔는가 먼지처럼 쌓여지는 사념(思念)의 무게 아래 외롬이 애증(愛憎)을 걸려 낙화(落花) 같은 회한(悔恨)들.
욕된 나날이 견디어 내 또한 이미 가을 눈을 감아 보니 청산(靑山)한 벗들이 많다 고향도 잊어 이십년(二十年) 이젠 먼 곳이 되었네.
열어 온 창(窓)들이 닫쳐 하늘과 내가 막혔네 유명(幽明)을 갈라 선 병풍(屛風), 그와 같은 먼 먼 거리(距離) 종잇장 한 겹에 가려 엇갈려 간 너와 나.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춘한(春恨) 2
두견이 운 자국가 피로 타는 진달래들
약산(藥山) 동대(東臺)에도 이 봄 따라 피었으리
꽃가룬 나들련마는 촉도(蜀道)보다 먼 한 금.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태양(太陽)을 여읜 해바라기
태양(太陽)을 여읜 하늘은 푸를수록 더욱 서러워 오직 고개 숙인 채 우러를 길 없는 해바라기 지지도 차마 못하고 외로 섰는 해바라기.
한마음 빌어온 그날 또 한번 믿기야 하건만 어느 사막(砂漠)에서뇨 바람이 바람이 분다 말없이 가슴을 닫고 지켜섰는 해바라기.
번쩍 꿈처럼 번쩍 솟아보렴 아아 나의 태양(太陽) 우러러도 우러러도 비인 하늘을 오히려 꿈을 헤이며 기다려 선 해바라기.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학(鶴)
날아 창궁(蒼穹)을 누벼도 목메임은 풀길 없고
장송(長松)에 내려서서 외로 듣는 바람소리
저녁놀 긴 목에 이고 또 하루를 여의네.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허일(虛日)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오후(午後)
파리 한 마리 손발을 비비고 있다
어덴지 크게 슬픈 일 있을 것만 같아라.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휴화산(休火山)
일찌기 천(千)길 불길을 터뜨려도 보았도다
끓는 가슴을 달래어 자듯이 이날을 견딤은
언젠가 있을 그날을 믿어 함부로ㅎ지 못함일레.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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