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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호우 시인 / 청추(聽秋)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8.

이호우 시인 / 청추(聽秋)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싫단 말 다신 않을래

이 밤도 또 밤새워 우는 저 가을벌레들 소리

더구나 우수수 잎들이 지면 어이 견딜가본가

 

늘어난 나이의 부피로 잠은 밀려 갔는가

먼지처럼 쌓여지는 사념(思念)의 무게 아래

외롬이 애증(愛憎)을 걸려 낙화(落花) 같은 회한(悔恨)들.

 

욕된 나날이 견디어 내 또한 이미 가을

눈을 감아 보니 청산(靑山)한 벗들이 많다

고향도 잊어 이십년(二十年) 이젠 먼 곳이 되었네.

 

열어 온 창(窓)들이 닫쳐 하늘과 내가 막혔네

유명(幽明)을 갈라 선 병풍(屛風), 그와 같은 먼 먼 거리(距離)

종잇장 한 겹에 가려 엇갈려 간 너와 나.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춘한(春恨) 2

 

 

두견이 운 자국가

피로 타는 진달래들

 

약산(藥山) 동대(東臺)에도

이 봄 따라 피었으리

 

꽃가룬 나들련마는

촉도(蜀道)보다 먼 한 금.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태양(太陽)을 여읜 해바라기

 

 

태양(太陽)을 여읜 하늘은 푸를수록 더욱 서러워

오직 고개 숙인 채 우러를 길 없는 해바라기

지지도 차마 못하고 외로 섰는 해바라기.

 

한마음 빌어온 그날 또 한번 믿기야 하건만

어느 사막(砂漠)에서뇨 바람이 바람이 분다

말없이 가슴을 닫고 지켜섰는 해바라기.

 

번쩍 꿈처럼 번쩍 솟아보렴 아아 나의 태양(太陽)

우러러도 우러러도 비인 하늘을

오히려 꿈을 헤이며 기다려 선 해바라기.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학(鶴)

 

 

날아 창궁(蒼穹)을 누벼도

목메임은 풀길 없고

 

장송(長松)에 내려서서

외로 듣는 바람소리

 

저녁놀 긴 목에 이고

또 하루를 여의네.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허일(虛日)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오후(午後)

 

파리 한 마리

손발을 비비고 있다

 

어덴지 크게 슬픈 일

있을 것만 같아라.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휴화산(休火山)

 

 

일찌기 천(千)길 불길을

터뜨려도 보았도다

 

끓는 가슴을 달래어

자듯이 이날을 견딤은

 

언젠가 있을 그날을 믿어

함부로ㅎ지 못함일레.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시조시인. 아호는 이호우(爾豪愚). 경상북도 청도(淸道) 출생. 1924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하였고, 29년에 일본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學]에 유학하였으나 신경쇠약증세의 재발과 위장병으로 귀국하였다. 시작활동은 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고, 40년 《문장》에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으로 <달밤>이 실리면서 본격화되었다.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도 참여하였다. 55년 첫시조집 《이호우시조집》을 간행하였고, 그 후의 작품들을 모아 68년 《휴화산(休火山)》을

발간하였다. <달밤>에서와 같이 범상한 제재를 선택하여 평이하게 쓴 것이 초기 작품의 특징이라면 《휴화산》에서는 인간 욕망의 승화와 안주적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55년 첫시조집으로 제 1 회 경북문화상을 받았고 72년 대구(大邱) 남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55년 첫시조집으로 제 1 회 경복문화상을 받았고, 편저로 《고금시조정해(古今時調精解)》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