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석 시인 / 나의 시지프스
그는 날마다 역기처럼 해를 들었다 놓는다고 했다 해가 유난히 무거웠던 날은 밤보다 일찍 어두워져서 돌아왔다
‘비온 날은 들 것이 없었겠네’ 물으면 하늘도 물에 젖고 해도 물에 젖어서 더 무거운 날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그가 들었던 무거운 해를 들고 와서 내게 건네며 잘 보관해 두라고 했다 가끔은 가벼운 해도 받아 본적이 있지만 그가 갖다 준 해가 스크랩 하듯 단순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벌 받는 사람의 아내로 살았다
나이가 들자 그는 말을 바꾸었다 그가 빛을 잃으면 해의 손에서 스스로 굴러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고 했다 봄꽃의 중력이 우리를 들어 올리듯 꽃길을 걸으며 짧게 날기도 했듯 날마다 신생의 어린 해가 떠서 세상과 하늘을 들어 올렸고 덩달아 그도 들어 올려 졌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해에게 들어 올려 질 날이 적어진 만큼 그의 몸이 무거워졌다고 했다 그가 해를 들어 올린 것이 아니라 해가 그를 들어 올렸던 것을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며 생이 벌이라는 생각은 버렸다고 했다
계간 『포엠포엠』 2016년 여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율 시인 / 슬리핑 뷰티 (0) | 2019.11.23 |
---|---|
정영효 시인 / 발생 (0) | 2019.11.23 |
조용미 시인 / 나의 몸속에는 (0) | 2019.11.22 |
강신애 시인 / 잃어버린 매 (0) | 2019.11.22 |
서안나 시인/그늘의 기술 (0) | 2019.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