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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하해 시인 / 날마다 만찬

by 파스칼바이런 2020. 11. 7.

정하해 시인 / 날마다 만찬

 

 

  낮을 이별한 저녁은 급히 오게 마련이다

 

  혁명을 논하던 술잔과 입을, 검문하지 않는 어둠과

  누군가를 소리 나게 부르고 싶은 이 땅에 없는 얼굴들에게

  술잔을 돌린다

 

  지난 밤 큰 잔치는 가고

  잠시잠깐 벌떼로 만나 새벽이면 흩어지는 구름들처럼

  눈을 뜨면 모두는 흔적 없이 실려 간다

  독한 햇볕과

  그 볕을 찬양하던 노동이

 

  으스름에 몰려든다

  같이 고향을 만들기 위한 장터인 여기서

  에써 만들어 내는 건 죽어도 청춘이다

  죽은 청춘이 벌이는

  일할 목뼈가 건재하게 만져지는 술이 들어가는 통로, 그 통로

  울분과 눈물을 밀어 숨기다 보면

  노래는 언제나 끝이 휘어진다

 

  저녁의 둥근 상에 앉아

  억눌린 아가미들이 서로를 음복하며, 뼈가 빠진 부분의 무게를 다는

 

웹진 『시인광장』 2014년 2월호 발표

 

 


 

정하해 시인

포항에서 출생. 2003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살꽃이 피다』, 『깜빡』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