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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신앙단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라

by 파스칼바이런 2020. 12. 15.

[신앙단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라

(유송자, 데레사, 국제 가톨릭 형제회)

가톨릭평화신문 2020.12.13 발행 [1592호]

 

 

 

 

제가 속한 AFI(국제가톨릭형제회)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적 삶을 이루는 데 일생을 봉헌하기로 서약한 평신도 공동체입니다. 회원들은 교육이나 상담, 사회복지, 사회운동과 사회개발, 의료복지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며 교회와 세상 안에서 다양한 사도직을 수행합니다.

 

꽤 오래전, AFI 국제생활 체험을 위해서 벨기에 브뤼셀에서 지낼 때, 단체의 국제 비서처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머물던 한 한국 회원과 단체의 국제 비서로 일하던 다른 AFI 회원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추기경 회의를 하셨던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회의를 마치신 후, AFI 국제 비서처를 방문하셨으므로 우리는 함께 산책을 나갔습니다.

 

“오, 밤송이 좀 보세요! 아름이 벌어지고 있어요!” “와! 그러네! 밤알이 떨어지려고 해!”

 

유럽에는 밤나무가 귀해서 오랜만에 보는 밤송이가 더욱 반가웠던지, 어린아이들처럼 들떠서 외치는 AFI들 사이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라” 하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특유한 저음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말씀대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보니, 밤나무 잎 사이로 눈부시게 빛나는 파란 하늘, 먼 곳에 은색 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작은 물체가 보였습니다. 코앞에 매달린 밤송이에 홀려서 그 이상 높게도 넓게도 보지 못했던 우리들은 “아! 비행기…” 하며 머쓱하게 웃고 말았습니다.

 

그 후, 저는 가끔 가슴이 막힐 것 같거나 삶이 답답해질 때,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라” 하신 추기경님의 말씀을 떠올리곤 합니다. 더 높은 곳이란, 다만 빛나는 은색 줄을 긋고 지나가는 비행기나 파란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하늘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신 ‘빛의 근원을 바라보라’고 하신 말씀임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난 후입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1-5)

 

해마다 예수님 성탄 날에 봉독되는 이 성경 말씀을 듣고 있으면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라”라고 하시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음성도 함께 들리는 듯합니다.

 

빛과 생명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며, 하늘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그 높은 곳이 바로 내 주변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받으며, 힘없는 소외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임을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시도록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