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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미카엘의 순례일기] (13) '부활의 로랑' 수사의 가르침

by 파스칼바이런 2021. 4. 9.

[미카엘의 순례일기] (13) ‘부활의 로랑’ 수사의 가르침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한 가장 간단한 실천법은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1.04.04 발행 [1607호]

 

 

 

▲ 언어도 통하지 않고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장애물도 없다. 독일 프라우 도움의 성모 순례 성당의 수사가 이곳을 방문한 CPBC소년소녀합창단 아이들을 배웅하고 있다.

 

 

파리를 비롯해 유럽 도시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현재와 과거가 하나의 장소에 뒤섞여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순례할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그 옛날 유럽 굴지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논했다는 파리의 라틴 지구에는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파리4대학(소르본 대학)을 비롯해 여러 대학과 도서관들이 즐비하고,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뤽상부르 공원, 프랑스를 빛낸 위인들이 묻혀 있는 국립묘지 팡테옹 등이 불과 100m 간격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유명한 장소들을 지나치다 보면, 뤽상부르 공원 옆 모퉁이 한쪽에 수백 년간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파리 가르멜 수도원의 소박한 정문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순교하거나 평생을 바쳐 다른 이를 위해 헌신했던 성인도 너무나 많지만, 오로지 자기 자신의 내면을 갈무리하면서 깊은 영성을 쌓아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었던 성인도 많습니다. 파리의 가르멜 수도원에서 평생을 보내신 부활의 로랑(Lawrence of the Resurrection) 수사님도 그중 한 분이십니다.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수도회’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가르멜회에는 아빌라의 대 데레사, 아기 예수의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등 누구나 알고 있는 영성가들도 있습니다만, 복잡하고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부활의 로랑 수사님의 이야기는 좀 더 특별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듯합니다.

 

17세기 초,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잔혹하고 많은 사망자(800여만 명)를 남긴 ‘30년 전쟁(가톨릭과 개신교로 갈라진 나라 사이의 종교 전쟁)’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던 니콜라스 에르망(Nicolas Herman)은 한쪽 다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뒤늦은 나이에 가르멜에 입회하면서 ‘부활의 로랑’이라는 수도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도 특출나지 못했던 그는 수도원에서 부엌일과 청소를 도맡게 되었고, 신학을 전공한 젊고 똑똑한 수도자들 사이에서 초라함을 느껴 수년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게다가 완전하신 하느님 앞에서 못나고 모자란 자신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어두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수사님께서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후,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저에게 하기를 희망하면 된다”는 단순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감이란 결코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가능한 것도, 죽음 너머에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모두에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요.

 

그분은 더는 자신의 모자람이나 지식의 부족을 의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도와 일상의 노동을 함께 하는 방법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지금 내 앞에 ‘현존’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느끼면서 생활하는 법을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수사님께서 알려 주신 단순한 실천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 안에서 나의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기도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를 주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하느님께서 지금 내 앞에 계신다”는 것만 알아채면 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내 앞에 살아계시며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부활에 참여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순례길이 막혀, 로랑 수사님께서 밥을 짓고 다른 이들의 신발을 만들며 50년을 살았던 수도원 앞에서 묵상에 잠길 수는 없습니다. 대신 북한산 아래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르멜 수도원을 찾아가봅니다. 수십 년 전에는 주변이 온통 숲 속이었던 곳입니다. 그 시절 수도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우물을 중심으로 ㄷ자 모양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지금은 수도원 앞까지 들어찬 건물과 소란스러움이 지난 세월을 실감하게 하지만, 담 너머 조용한 수도원 안에서 수녀님들과 함께하시는 그분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시끄럽고 복잡한 사거리 한켠에도 똑같이 계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느껴봅니다.

 

“하느님 현존에 관한 연습은 처음에 어렵지만, 어느 사이에 내 영혼에 놀라운 영향을 미치고, 풍요로운 은총을 가져옵니다… 이 거룩한 실천을 끌어안고자 원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마디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보통 그것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주신다.” (「하느님의 현존연습」(부활의 로랑 형제 니콜라 에르망, 가톨릭출판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