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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동호 시인 / 아스팔트의 꽃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12.

최동호 시인 / 아스팔트의 꽃

 

 

달리는 오토바이 날아가는 바퀴가 빛난다.

 

무한 질주 속도에 적중된 자는 치솟는다.

 

속도의 피가 달아올라 물컹한 아스팔트

 

검붉은 아지랑이 꽃은 요염하게 피어난다.

 

 


 

 

최동호 시인 / 여정(旅程)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땅을 울리며 가야지,

아니, 바람도 모르게

풀잎 소리도 없이 가야지

어두운 곳에서

소리도 없는 곳으로

그림자도 없이 가야지.

 

잠들지 않는 자가

기침하는 문도

멈추지 않고 가야지

문틈으로 내비치는 불빛이

황량한 들길을 비춰도

마음속에 자라는

거역(拒逆)의 풀을 눕히면,

 

소리도 죽고

바람도 멎어

그림자도 없는 곳,

휘저어도 걷히지 않는

안개 덮인 산에서

누군가 자꾸 부르는

뜨거운 소리를 찾아서

가야지.

황토바람 휘휘 날리며

철창을 치우면

가쁜 숨이 남아 있고

엉겅퀴

가시나무로 덮인

온몸을

뜨겁게 물들이며

땅을 울리며 가야지.

아아, 깊은 밤에

쫓기는 사람처럼 가야지.

 

 


 

 

최동호 시인 / 불꽃 비단벌레

 

 

부싯돌에 잠들어 있던

내 사랑아!

푸른 사랑의 섬광

가슴에 지피고 불 속으로 날아가는

무정한 사랑아!

 

소용돌이치는 어둠에서

탄생한 유성이

지구 저편 하늘을 후려쳐

다른 세상을 열어도

태초의 땅에 뿌리박혀 침묵하는

 

서슬 푸른 불의 사랑아!

 

유성이 유성의 꼬리를 잘라

번갯불 밝히는 밤

은하 만년을 날아서라도 나는

네 얼굴 보고 싶다

 

영롱한 빛 불꽃 가슴을 점화시켜 다오

말안장에 새겨진

비단벌레 날개빛, 내 사랑아!

 

 


 

 

최동호 시인 / 구름 시집

 

 

늙은 구름은 지상에 떠도는 비통한

인간의 울음을 끌어 올려

하늘에 쌓아 놓은 검은 활자들의 방대한 시집이다

 

때로 늙은 구름에선 지상의 언어에 담겨

세상의 빛이 되고 싶은

묵은 활자들의 구시렁거리던 소리가 메아리치기도 한다

 

인간의 눈물로 늙은 구름은

몇 겁의 생을 바쳐도

다 적어낼 수 없는 활자들을 뭉게뭉게 피워 올리다가

 

때로 당산나무 가장 외진 나뭇가지

빈터를 찾아

깊이 간직하고 있던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최동호 시인, 평론가

1948년 경기도 수원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박사. 1976년 시집 ‘황사바람’ 첫 출간,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현대문학》 추천완료. 이후 ‘시와 시학상 평론상’, ‘편운문학 평론부분 대상’, 만해상 문예부분 대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시집 《황사바람》 《아침책상》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공놀이하는 달마》 《불꽃 비단벌레》 《얼음얼굴》 등. 현대불교문학상, 고산윤선도문학상, 박두진문학상, 유심작품상, 김환태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평론부문) 등 수상. 경남대, 경희대, 고려대 교수 역임.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겸 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