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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나’ 새롭게 알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을 배웁시다!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7.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이해 I ① 평신도의 개념과 역사적 발전
평신도는 누구인가? 그는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다. 이것이 평신도의 가장 큰 영예이자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본질적인 말일 것이다. 공의회는 바로 이 평신도에 대한 이해에서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근본적인 진전을 이뤄냈다. 이제 평신도가 누구인지 그 달라진 평신도 이해와 함께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을 두 장에 걸쳐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 시간으로 우선 ‘평신도’라는 말이 어떻게 유래했고 어떠한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말 ‘평신도’는 그리스어 ‘라오스(λαός)’에서 번역된 것이다. 라오스는 그리스의 세속 역사에서 무리, 민중, 백성을 뜻하며, 신약에서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면서 이스라엘이나 하느님 백성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일컬었다. 라오스는 직무를 맡은 사람들과 구분되는 하느님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구분을 위하여 사용된 개념이었다. 곧 라오스는 전체 그리스도인과 함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일컫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지금 통용되고 있는 ‘평신도’는 비록 성경의 라오스를 번역한 것이긴 하지만, 성경의 라오스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예컨대 구약에서 사제 및 예언자와 구별하여 일반 백성에게 이 개념이 사용된 적이 가끔 있으나(<칠십인 역>: 이사 24,2; 호세 4,9), 신약에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 곧 ‘라오스’로 불린다면, 이는 본래 모든 신앙인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기록에 직무자와 구분된 오늘날의 평신도 개념이 처음 나타난 것은 클레멘스의 첫째 편지(96년경)인데, 유다의 예배질서와 관련해서다. 곧 유다교 공동체가 대사제, 사제, 레위, 백성으로 각각의 임무를 구분한 것을 빌려 “사제의 질서”(Ordo sacerdotalis)의 직무자와 “교회의 질서”(Ordo ecclesiae)로서의 평신도를 구분한 것이다. 이후, 라오스가 직무자에 대하여 평범한 신도를 구분하는 단어로 사용되면서 평-신도만을 가리키는 단어로 고착되었다. 그러나 초기교회에서는 직무를 강조한 것이었을 뿐 직무에서 제외된 평신도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었다. 곧 평신도들은 직무자와 함께 교회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는 교회의 주체였다.
중세에 이르러 성직자의 직무가 강조되면서 평신도는 점차 자기들의 권한과 기능을 잃게 된다. 복음정신과는 거리가 먼 성직자 우월주의와 평신도의 무능화 경향이 교회사 초기에도 나타나지만, 이에 반해 하느님의 백성을 복음정신 아래 이해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는 특기할 만하다: “여러분을 위하여 내가 있다는 사실은 나를 두렵게 하지만,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위로해 줍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주교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인입니다. 전자는 직무의 이름이고 후자는 은총의 이름입니다. 전자는 위험한 이름이지만 후자는 구원받을 이름입니다”(교회 헌장 32항 참조).
이렇게 성직자와 평신도의 대립관계는 11세기, 교황 그레고리오 7세 때 절정에 이르기까지 강화되다가, 계몽주의와 그로 인한 교회의 세속화 영향 아래 평신도의 역할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곧 교역자들이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데 한계를 느끼면서 평신도가 ‘세상에 대한 봉사’를 떠맡아 주기를 희망하게 된 것이다.
[2021년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대전주보 4면]
7.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이해 I ②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관점
지난 회에 평신도의 개념과 역사적 발전을 살피면서 중세에 절정에 달했던 성직자와 평신도의 대립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을 보았다. 바로 그 바탕 위에서 이 공의회가 개최된 걸 생각하면, 교회의 변화는 분명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으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뤄내는 것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종전까지의 평신도의 무능화, 무력화(無力化)를 비판하고, 무엇보다 평신도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평신도와 그리스도와의 결합을 들었다. 곧 이 그리스도와의 결합에 근거하여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을 체계적으로 재평가한 것이다.
공의회에서는 구체적으로 ‘평신도’ 개념이 반(反)성직자 개념으로 들린다는 이유로 ‘신자’로 대체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품 받은 직무자나 축성된 수도자가 아닌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에게 비성직자로 구분되는 평-신도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평-신도든 주교와 교황을 포함한 성직자든 모두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 한 ‘신앙인’, 신자라는 것이다. 신앙인 안에 성직자 아닌 신자를 새로운 신분으로, 곧 ‘평신도’로 구분하여 계급의식을 심는 것은 하느님 백성 개념에 맞지 않다. 더구나 이때 평신도를 위해 사용된 라오스는 본래 성직자까지를 다 포함한 단어였음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가 아닌 ‘신자’개념의 보편화가 교회 안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이제민).
공의회 이후에도 한동안 - 지금도 - 평신도와 직무자(성직자)를 신학적으로 구분하고, 각자의 그리스도교 사명을 나누어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공의회의 근본정신에서 볼 때 이는 무의미한 것이다. 왜냐하면 공의회와 함께 교계제도와 평신도, 교회의 안과 밖, 교회와 세상의 이분법적 구분은 근원적으로 극복되었기 때문이다.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례와 견진을 통해 똑같이 하느님 백성인 교회와 교회 사명의 주체가 되었다고 강조한다(교회헌장 33항). 그러므로 평신도는 교회와 구분되는 세속적인 삶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그들의 소명을 완수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처럼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한 직무’에 소명을 받았다는 것을 환기하면서 이 소명이 특히 사회적 직업(일)을 가지고 일상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수행된다고 주장함으로써 평신도의 소명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 소명을 교회 안의 어떤 특수 직분의 일로 보는 것은 재고해야 할 일이다. 곧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근본적인 평등성이 교회의 일반적 의식으로 일깨워지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형제자매적 사랑의 관계가 실제로, 실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교회 안의 평신도 문제는 더 이상 신분 문제가 아니라, 교회론적 중심(핵심) 문제이며, 엄청난 교의(학)적, 사목적 그리고 정치적 중요성에 대한 문제이다. 그것은 교회 자체의 존재냐 아니면 비-존재냐의 문제, 곧 교회의 실존의 문제인 것이다(E. Klinger).
[2021년 9월 12일 연중 제24주일 대전주보 4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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