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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의 순례일기] (37) 독일 한인성당 신자들의 한국 순례(상) 40년 만에 고국 성지 순례를 계획하다 김원창(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1.10.03 발행 [1631호]
독일 서쪽 지역에는 도르트문트, 에센과 같은 큰 도시를 중심에 둔 루르 지방이 있습니다. 남쪽에 위치한 본, 뒤셀도르프, 레버쿠젠과 합쳐 라인-루르 지역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최대의 공업지대입니다. 독일권 내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으며 석탄이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수력과 석탄이 공업의 중심이었던 19세기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성장하였고, 라인 강 옆에 위치한 덕에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이곳 라인-루르 지역은 매우 특별한 지역입니다.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경공업 수출주도의 사회로 변해가던 한국의 1960~70년대, 도시로 모인 수많은 실업자의 노동력을 해외 진출로 해결하려는 정부 정책과 맞물려 많은 광부와 간호사가 멀고 먼 길을 건너와 정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 자주 등장했던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들이 디뎠던 땅이 바로 라인-루르 지방입니다.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낯선 번호의 국제전화가 회사로 걸려왔습니다. 독일 한인 성당 신자들의 순례에 관한 문의였습니다. 루르 한인 성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고국의 성지를 순례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부산교구에서 파견된 본당 신부님께서 제안한 이 순례는 추석 연휴와 맞물려 있어서, 한국에 도착해서 열흘간 순례하고 각자의 고향에서 추석을 보낸 후에 다시 독일로 귀국하는 일정이었습니다.
한국의 신자들과 함께 해외 성지를 순례하는 일을 주로 맡았던 우리 회사 입장에서, 이 순례는 매우 특별하고 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항상 현지 여행사에 요청하고 확인했던 일을 이번에는 직접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적은 인원의 신자들이 짧게 국내 성지 순례를 원하셔서 준비해드린 일은 있었지만, 40명에 달하는 해외 한인 신자들과 열흘간 한국 순례를 준비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숙소부터 미사 예약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자그마한 일까지도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기로 유명하셨던 당시 사장님께서는 오랜 기간 이 일에 매달리셨습니다. 숙소는 지방 교구 피정의 집을 이용하고, 여의치 않은 곳은 호텔을 준비했습니다.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는 분들을 위해 전라도의 정식, 전주비빔밥뿐 아니라 청주에서 유명한 꿩 요리까지, 각 지방의 특별한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가을에는 버스 기사들도 국내 여행 때문에 바쁜 시기이기에, 친절하고 신심 깊은 버스 기사께 꼭 그 기간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부탁하는 일도 잊지 않아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지에서의 미사 예약과 장소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는 신부님을 총동원해서 가능하면 직접 성지 신부님께서 성지를 안내해 주시도록, 또 미사에도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중요 성지에는 각 성지에 관해 설명해 주시는 봉사자가 있지만, 40년 만에 고국 성지를 방문하시는 분들도 계시니만큼 좀 더 특별한 시간을 맞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성지 신부님들께서 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가이드를 겸해 그분들을 인솔해야 할 저 자신이었습니다. 성지에서야 그렇다 쳐도 종일 버스에서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펼쳐 든 한국 교회사는 정말 낯설었습니다. 오랫동안 해외 성지를 순례하면서 세계 교회사의 흐름과 각국의 성지에 대한 나름의 지식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정작 내가 살아가는 땅에 대해서 이렇게나 무지했다는 사실에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사를 읽기 위해서 한자 사전을 뒤져야 했고, 가톨릭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한국 교회사와 관련된 책과 학부 논문까지 모두 빌리고 복사를 해왔습니다. 유일하게 다행인 점은 순례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6개월이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미리 정해진 해외 순례를 계속 인솔해야 했지만, 제 머리와 마음은 오직 한국 교회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했습니다. 귀국하면 가까운 한국의 성지를 찾았고, 책을 통해 머릿속에 담긴 선조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한 국내 순례가 시작되는 날,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 대기실에서 순례단을 기다리는 사람은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이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땅, 독일에서 몸을 상해가며 돈을 번 이유는 가족들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들이 보내주었던 돈으로 공부하고, 결혼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바로 그 동생들이 그곳에서 순례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투명한 유리문이 열리고, 검게 그은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띤 루르 한인 성당 신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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