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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김승월 평화칼럼]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5.

[김승월 평화칼럼]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김승월 프란치스코(시그니스서울/코리아 회장)

가톨릭평화신문 2021.10.03 발행 [1631호]

 

 

 

 

듣기만 하여도 좋은 말이 있다. 소중한 가치나 아름다운 의미를 지닌 말이다. 그 좋은 말을 그릇되게 쓰는 이들이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앞세워 ‘사랑의 매’를 휘두르거나, 진리를 가르친다며 그릇된 이념을 주입하는 자들이다. 자기편 지지층만 염두에 두면서 국민을 들먹이거나, 개악하면서 개혁이라고 둘러대는 자들이다. 핵무기를 쥐고 흔들면서 평화를 외치는 북한도 있다. 좋은 말을 더럽히는 무리다.

 

좋은 말로 간판 달고, 버젓이 다른 짓 하는 이들이 있다.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고, 공화국 체제도 아니면서 민주공화국이라니 기가 차다. 80년대 군부독재 정권이 세운 민주정의당의 당명도 어이없다. 민주적이지도 않았고 정의롭지도 못하면서 그리 이름 달았다. 자신들의 치부를 이름으로 가린 게 아닌가.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다는 정의기억연대의 정의는 무슨 뜻의 정의일까. 분열된 모습을 보였던 미래통합당은 무슨 의도로 통합을 넣었을까. 국내외 언론인단체들의 반대에도 굽히지 않고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인 더불어민주당은 누구와 더불어 일한다고 그리 이름 지었을까.

 

자신들이 지향하는 바를 이름으로 내걸 수는 있다. 간절한 염원을 담기도 한다. 그렇게 행세하려면 이름에 담긴 정신을 받드는 모습쯤은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름을 그리 달고도 그 타령 그대로 라면, 이름을 내려놓는 게 마땅하다. 좋은 이름으로 겉치레하는 건 위선이다. 위선이 통한다고 여기는 건 국민을 얕보는 짓이다.

 

말의 의미란 사회 구성원이 합의한 약속이다. 특정한 말의 뜻에 대하여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서로 소통한다.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면서 정의를 부르짖으면, 참으로 정의로운 사람이 누구인지 헷갈리게 된다. 정의의 의미도 빛바래 진다. 말에 담긴 가치를 조롱하는 짓이다. 그런 거짓 쓰임에 홀리면, 휘둘린 사람도 선동꾼과 한 무리가 된다. 선동꾼을 거들고 명분을 주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도 정신 바짝 차리고 걸러 듣지 않을 수 없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정의로운지, 공정을 말하는 사람이 공정한지를 살펴야 한다.

 

말을 더럽히기 쉬운 곳 중 하나가 정치 분야 아닐까. 좋은 말이라면 죄다 갖다 써 대니 뒷감당하기 쉽지 않을 게다. 관심을 모으고 여론을 이끌려고 하니 구호나 선동을 일삼게 된다. 내 건 구호나 선동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궤변으로 슬쩍 넘기거나 모른 체하고 계속 우기기도 한다. 말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말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기 쉽다. 무책임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무릇 정치인이라면 말을 무겁게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가족의 부동산투기의혹에 사표를 던진 국회의원이 한 말이다. “정치인은 세상에 내놓은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바로 선다.

 

대통령 후보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올바른 사람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마음에서 넘쳐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 6, 45) 내 건 약속이 사탕발림인가를 따지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동안 해온 말과 행적을 살피는 게 먼저 아닐까. 겉만 뻔지르르한 말을 했는지, 말과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세세히 살펴 걸러내야 한다. 정치인들이 한 말과 행동은 그들의 속내를 드러내 준다.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안다.”(마르 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