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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12. 배추벌레를 잡으며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가톨릭평화신문 2021.10.10 발행 [1632호]
오늘은 지난 8월에 심은 김장배추밭에서 일했다. 일이라기보다 배춧잎 사이사이를 보며 배추벌레를 잡는 작업이었다. 이제 어린잎들이 배춧속을 만들기 위해 잎을 오므리고 있어서 오히려 상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벌레 잡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른 집 배추는 벌써 보기 좋게 여물어 김장배추의 꼴을 갖춰가고 있는데, 우리 밭의 배추는 크기며 빛깔이 아직 멀어 보이고, 심지어는 폭격을 당한 듯 구멍 난 것이 가엾어 보인다. 그러니 주인은 안쓰러워서라도 배추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벌레가 한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한 잎, 한 잎을 젖혀가며 벌레의 행방을 찾는데, 벌레는 때때로 보호색으로 무장해 눈속임하곤 한다. 아무리 보호색으로 눈가림해도 배춧잎에 벌레 똥이 보이면 그 배추에는 분명히 벌레가 있었다. 이 작업을 우리 수녀님들은 “배추밭 응급실에서 수술 중”이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초보농부 안나 수녀님도 처음에는 벌레를 보며 어려워했지만, 이제는 손으로 잡아 벌레 통에 넣는다. 아니 한술 더 떠서 “와, 이 벌레는 정~말 예뻐요”라고 말하며 잡는다.
이렇게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나비들이 짝을 이루어 날아오거나 배춧잎에 앉으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훠이!” 하고 소리를 지른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수녀님들은 배추밭에서 나비를 만나면, 나비에 대한 좋은 마음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 예쁜 나비가 배춧잎마다 알을 낳고 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비는 예쁘다.
우리는 이렇게 잡은 벌레를 모아 닭들에게 준다. 닭들은 주인이 밭에서 그냥 일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들을 위해서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인지 잘 안다. 닭장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소리를 들어보면 무척 신이나 있고, 주인을 재촉할 때도 있다. 오늘은 자기들을 위해서 그 좋아하는 벌레를 잡고 있다고 닭장이 아주 소란스럽다.
이렇게 가을 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배추벌레를 잡으며, 문득 나 자신을 의식하곤 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남들 가는 방향과 속도에 따라서 무작정 달려가는 그 속도가 ‘여기 이 자리’에서는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바람 부는 날에 우리 산기슭으로 놀러 나오는 매처럼, 바람을 거슬러 날아올라 오히려 바람을 마주하는 그 모습과 같다. 다른 모든 새는 정말 똑똑하게 바람 가는 그 길을 택하는데, 매는 바람 부는 날 역풍을 즐기러 이 산으로 놀러 오기 때문이다. 사서 고생하는 매의 비상을 보고 있자면, 다만 배추벌레를 잡는 이 일이 ‘시류’에 휩쓸릴 수 있는 그 바람을 마주하는 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기 좋고, 먹기 좋은 배추를 재배하기 위해 편리함을 위해 살충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배추벌레를 잡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토끼를 본 사냥개는 토끼를 잡을 때까지 달려간다. 그러나 달려가는 사냥개를 그저 따라가는 사냥개들은 가다가 포기할 수도 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맛 들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신앙 고백을 한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잘 마주 뵈면, 당신을 따르라는 그 부르심에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무작정 길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본 이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세례 때에 내려오신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신앙감각으로 재촉하시고, 거슬러 오르는 회개의 삶으로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 배추벌레를 잡는 일과 건강한 지구를 위해 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일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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