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빈 평화칼럼]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보도국장) 가톨릭평화신문 2021.11.07 발행 [1636호]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위령 성월을 맞았다. 우리 속담에 “저승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말이 있다. 거리 두기와 격리가 일상화된 지금, 말 그대로 대문 밖이 저승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꼭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죽음은 어느 순간 느닷없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죽지 않고 부귀와 영화만을 누리려고 사력을 다한다.
재력과 권력이 죽음을 유예시킬 수는 없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의 광풍이 점점 거세지고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권력 다툼과 경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죽음 앞에선 모두가 사상누각이요, 풍전등화이다. 장생불사를 꿈꾸며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도 결국은 수레를 타고 전국을 순행하던 중 부패한 시신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던가?
삶과 죽음은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로 연결돼 있다. 이승에서의 슬픔과 고통이 용서와 사랑으로 정화되면 그 영혼은 저승에서 구원되고 영롱하게 빛난다. 반대로 이승에서 욕망과 탐욕으로 타인을 짓밟고 그 결과로 부귀영화만을 누렸다면 저승에서 그 영혼은 헐벗고 버림받고 가난하게 될 것이다. 이승에서의 삶의 궤적이 저승의 삶을 예고하고 보장받는다. 하느님의 은총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죽음이 가치 있는 죽음이고 어떻게 죽어야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것일까?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 입구 빨간색 벽돌 기둥에는 이런 라틴어 경구가 새겨져 있다.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란 뜻이다. “오늘은 나에게 죽음이 찾아왔지만, 내일은 너에게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준비하라”는 의미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이승의 삶에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의미이다. 그동안 우리는 죽음에 대해 불결하고 부정한 것,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애써 외면하고 마치 나에겐 죽음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왔다.
10년 전 10월 하늘나라로 떠난 애플사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던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제가 인생의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이승을 마감하고 죽음으로 가는 저승, 하늘나라에도 내일은 있고 꽃은 피고 지고 곱게 물든 단풍과 퇴색한 낙엽은 나뒹굴 것이다. 이승에서 온전히 생명을 나누고 자연과 하나 되는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하는 것! 이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와 다음 세대가 가야 할 길이다. 성경 창세기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위령 성월을 맞아 나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하늘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준비할래?” “네, 연옥 방송국이나 천국 방송국의 기자로 하늘나라를 취재해 이승에 뉴스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준비는 하느님의 면접을 통과하기 위해 이승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흡족한 기자로 열심히 천상의 양식을 보도하겠습니다.” 이승에서 수행하고 있는 소명, 저승에서도 이루어지길…. 겸손되이 다짐하고 노력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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