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정우의 인연의 향기] '내 탓'과 '네 덕' 사이에서 길정우 베드로(전 국회의원) 가톨릭평화신문 2021.11.21 발행 [1638호]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까지 100여 일 남은 시점에 우리 국민들이 새로운 지도자와 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어떤 지도자든지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면 나라와 국민 위해 진력하겠다는 결심을 다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그런 정도의 초심은 국민들이 기대해도 될 것이다. 문제는 선거 당일까지 후보자들이 보이는 언행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실망감만 더해 줄 것이란 걱정이다.
자기 잘난 모습을 부각시키기 보다 다른 후보들 흠집 잡고 비난하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소위 네거티브 선거전략이 유권자들에게 먹혀왔던 것도 무시 못 할 사실이다. 말도 안 되는 조합용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내로남불’은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리는 못된 버릇이다. 책임 회피는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 가장 피해야 할 자세다. 같은 죄를 지어도 책임 있는 공직자에겐 추가적 처벌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이 실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무책임한 행태와 거친 입담 때문이다. 오래전 대선 출마 중 중도 사퇴한 분이 언론인들에게 그 배경을 가볍게 설명하다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선거에 나서면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랑하고 상대방을 비난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잘해낼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기 자신에겐 너그럽고 상대방에겐 한없이 모질어야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소위 정치 선진국이란 곳에서도 선거 때면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다만 그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치의 수준이란 정치인들의 언행을 지켜보면서 투표장에서 자기 나름의 선택을 하는 국민들의 수준을 대변한다.
국회의원 시절 가톨릭 평신도공동체인 마리아 사업회(포콜라레 운동)의 ‘일치를 위한 정치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할 때 동료 의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바른 정치언어상’을 제정하고 국회의장이 직접 시상하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외부 교수들과 대학생들이 각 의원들의 모든 공식 발언을 검토하여 평가했다. 책임 있는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가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엄중한 평가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행사였다. 나아가 조금은 순화된 정치언어 사용과 품격 있는 정치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였다.
비슷한 시절 각 종교 지도자들이 참여하여 국회에서 ‘답게 삽시다’ 캠페인을 벌였던 기억도 새롭다. 물론 주된 대상은 국민들을 가장 좌절케 만드는 정치인들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을 겨냥한 메시지였다. 한마디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 결과이기도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걸핏하면 ‘남 탓’하는 버릇은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반대로 ‘네 덕분’이란 생각은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자세다. 선거를 앞두고 상대방 덕분이란 자세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남 탓하는 데 익숙한 후보는 결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모든 후보들이 보수, 진보를 넘어서 중도에 자리 잡은 유권자들의 표에 호소하고 있다. ‘뺄셈’ 정치가 아닌 ‘덧셈’ 정치를 해야 공략이 가능한 일이다. 배제하는 정치가 아니라 보태가는 포용의 정치를 하는 지도자가 ‘지도자답게’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상황에 이제까지 어디에선가 지도적 역할을 해 온 나 역시 책임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는 자세로 먼저 “내 탓이오(Mea Culpa)”를 외칠 수 있는 후보자를 보고 싶다.
나쁜 인연 탓이라 할지라도 내가 간여되었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책임 있는 지도자의 자세다. 나쁜 인연도 인연이다. 그리고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어진 인연이라면 ‘네 덕분’이란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것이 지도자다운 태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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