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1) 배우 안성기 (요한 사도) 인간 안성기가 국민 배우로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 가톨릭평화신문 2021.11.28 발행 [1639호]
“아, 저분도 가톨릭 신자였네~”
유명 배우, 가수, 예능인, 운동선수, 셀럽 등이 신자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신앙인의 공통된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십자 성호를 긋거나 손에 묵주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에, 때로는 사제나 수도자가 꿈이었다는 고백에 같은 신앙인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고 친근감까지 느낀다. 하지만 브라운관을 통해서는 그들의 신앙 이야기를 들을 길이 없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허영엽 신부가 삶의 자리에서 말과 행동으로, 때로는 드러나지 않은 선행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이들과의 만남을 전한다. 셀럽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인터뷰이기보다 사제와 신자 간의 진솔한 대화를, 신앙 고백을 풀어냈다.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는 신앙인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복음의 씨앗을 전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알려지지 않은 미담을 공개한다.
국민배우 안성기. 그의 이름 석 자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그는 얼마 전 한국 영화인 최초로 ‘브랜드 로레이 어워드(The Brand Laureate Awards)’ 레전더리상(Legendary Award)을 수상했다. 오래전 한 선배 신부께서 “배우 안성기는 우리 교회의 큰 자랑이며 그의 활동 자체가 선교적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안성기의 세례명은 요한 사도이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이 제자 중에서도 가장 아꼈고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맡길 정도로 믿음직한 제자였다. 그의 세례명처럼 안성기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나는 말을 무척 아끼는 고 정진석 추기경으로부터 “안성기 배우에게 무척 고마웠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2005년 정 추기경은 당시 국민적 영웅(?)이었던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연구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정 추기경은 배아는 이미 인간이므로 윤리적 문제가 없는 성체줄기세포연구를 주장했다. 그 당시 정 추기경은 심한 욕설이 가득한 악플에 엄청나게 시달렸다. 정 추기경이 교구에 생명위원회를 만들며 안성기 배우에게 생명 홍보대사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다. 아마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안성기는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교회에 순명하는 마음이었다”고 회고했다.
배우를 선택하는 요즘의 기준은 예전과 달리 연기력뿐 아니라 좋은 인성과 자기관리가 포함된다고 한다. 배우가 마지막까지 오래 살아남으려면 역시 인성이 좋아야 하는데 사실 모든 분야에서 비슷한 것 같다. 예전에 한 일본인은 안성기의 평전을 쓴 이유에 대해 대뜸 “안성기의 인품에 매료되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으레 우쭐하여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가끔 생기련만 안성기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다. 나는 안성기 배우와 대화할 때면 항상 눈을 보면서 질문하고 그가 입을 떼기를 한참 기다리곤 한다. 돌아오는 그의 말은 오래 뜸을 들인 만큼 항상 진중하다. 나는 ‘배우는 감정을 한껏 표현해야 하는데 왜 그는 반대로 감정을 억누르는 듯 보일까?’ 싶어 한동안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그만이 갖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신중함과 소년처럼 순수한 장난기가 어우러지는 그만의 특별한 연기는 상상을 초월한 세계를 넘나든다.
얼마 전 서울대교구청 마당에서 만난 배우 안성기는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건강에 관한 소문이 많아 걱정 많았는데요.
“그동안 쉼 없이 일하고 나름대로 몸을 돌보느라 노력했지만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봐요. (하하하) 많은 분이 걱정해주셔서 다행히 많이 좋아졌어요.”
그의 특유한 웃음을 접하자 한순간에 마음이 편해졌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매일 빠른 걸음으로 걷고 기구 운동도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화를 안 내고 마음 편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염수정 추기경님은 안성기씨 이야기가 나오면 동성학교 동문이라며 반가워하세요. 레전더리 수상 소식을 들으시고 세계적인 기준에 합당한 훌륭한 배우로 인정받게 되셨다며 기뻐하셨어요.
“고맙게도 염 추기경님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어려운 시기에 기쁜 소식으로 국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특히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달라 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저라고 뭐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주변 분들이 잘 도와주고 매일 매 순간 고민하면서 노력하고 한 걸음씩 힘겹게 내딛는 것이지요. (그런 말씀을 들으면) 부담스럽고 어깨가 더 무거워져요(하하).”
착한 모범생으로 사시면 세상사는 재미는 없을 것 같은데요?
“(웃음) 사실 저는 촬영 현장에서 일하는 게 가장 즐겁고 행복해요. 그 순간에 몰두하고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 가정에서도 늘 쏠쏠한 재미가 있어요.”
국민배우라는 말이 부담은 안 되는지요?
“사실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노력한다지만 사실 많이 부족해요. 많은 사람의 도움, 가족들 특히 어머님의 기도 덕분이죠. 사실 제 믿음은 많이 부족하고 어머니의 기도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안성기 배우의 어머니 김남현(헬레나) 여사는 내가 1980년대 중반 수유동본당 보좌 시절 인근 본당에 사셨는데 그 일대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물론 인기배우의 어머니로서 인기도 좋았지만 소리 없이 주변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교우들과 함께 소탈하게 어우러져 기도하는 마음 착하고 신심 깊은 자매님으로 유명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절대 드러내는 법 없이 묵묵히 내조하는 겸손함을 아들이 꼭 빼닮았다.
많은 아역 스타들이 어른 배우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형제님은 10여 년간 공백기도 길었는데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해요.
“(웃음)사실 공백기가 오히려 도움되었어요. 얼떨결에 아역 배우로 데뷔하여 몇십 편의 영화를 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는 사실 어려웠어요. 그동안 어린 나이에 너무 정신없이 중심을 못 잡고 인기에 휩쓸려 살았던 거죠.”
베트남에 가시려고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를 가셨다고요.
“네, 그런 계획을 세웠는데 학군단(ROTC) 소위로 임관하기 전에 베트남 전쟁이 종전되었어요. 군대 제대 후 취직도 어려웠고 한동안 직장 생활도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 안 풀렸어요.”
그때가 인생의 어려운 시절이었네요.
“네, 지금 생각하면 저에겐 어두운 슬럼프의 기간이었죠. 그런데 그 힘들고 어려운 경험들의 시간이 나중에 연기할 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저는 아역 배우로 영화에만 나왔기 때문에 다시 데뷔했을 때 그냥 신인배우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지금 같이 미디어가 발달한 환경이면 어려웠을 거예요.”
주인공 배우가 조연 배우를 하시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물론 지금은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 되셨어요.
“과찬이세요.(웃음) 사실 당시 상황이 주연을 하던 젊은 배우가 마흔이나 쉰을 넘어서 계속 활동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한동안 주연을 맡지 못하면서 고뇌하고 갈등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모든 게 마음가짐이 중요하잖아요. 나의 욕심을 버리고 초심을 생각하면 스타보다는 연기자가 되기로 했었으니 작은 역할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어요.
후배 연기자들에게 한 말씀을 드린다면?
“요즘처럼 SNS 등 미디어의 발달은 연기자들에게 장점도 많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해요. 특히 무차별적인 악플은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하잖아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중심을 잡고 스스로 잘 다스리고 단단하게 훈련해야 할 것 같아요. 공인(公人)은 어떻게 보면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수도자라면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지 않을까요?
“네, 꼭 같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으로 노력해야 하겠죠. 연기자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중의 사랑을 받아 공인이 되죠. 높은 곳일수록 한번 추락하면 치명적이지요.
평소 무슨 기도를 가장 많이 하세요?
“항상 내가 하는 일과 가정을 위해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살면서 더욱 기도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되돌아온 답이 너무 뻔한 것 같으면서도 뻔하지 않게 느껴졌다. ‘안성기 배우의 오늘’은 처음부터 정상의 자리가 아니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끊임없이 노력해온 결과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만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만나보면 안성기는 예나 지금이나 늘 똑같다. 故 최인호 작가가 말한 것이 생각났다.
“안성기는 평생 늘 푸른 소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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