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준의 병적 징후] 기이한 건강보험료 논쟁 정형준 토마스 아퀴나스(재활의학과 전문의) 가톨릭평화신문 2021.11.28 발행 [1639호]
건강보험은 한국 사회보장제도 중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흔히 말하는 ‘오바마도 부러워하는 한국의 건강보험’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물론 한국이 실제 유럽의 의료보장체계보다 나은 건 아니다. 그래도 주거, 교육, 돌봄, 연금 등등 수많은 복지체계 중에서 그나마 훌륭한 보편적 보장제도로 자리매김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보험제도는 1977년 대기업 중심으로 도입되어 점차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 범위와 혜택을 넓혔다. 이제 유럽식 의료보장을 지향해 최소한 일본이나 대만 수준의 제도로 개혁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런데 항상 여기에 걸림돌은 재정 논의다.
우선 OECD 평균 수준의 보장성에 도달하려면 보험재정이 크게 충당되어야 한다. 여기다 대부분 선진국이 시행 중인 상병수당 같은 현금 급여제도를 도입하는 데도 돈이 든다. 새로운 서비스나 보장범위를 넓히지 않더라도 한국은 노령화가 진행 중으로 의료비가 자연 증가할 공산이 크다. 보험재정이 확충되어야 주요 선진국 수준의 제대로 된 공적보험으로 개선할 수 있다.
남는 과제는 지출의 낭비를 줄이고 재정을 확충하는 부분이다. 우선 지출 부분은 지불제도 개편이나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의 과제가 제안되는데, 지난 30년간 민간의료공급이 주된 한국의 현실상 공급자 저항으로 개혁이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정치권도 동네 병ㆍ의원 눈치를 보면서 지출구조에 대해서는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부분만큼은 가끔 일부 의료공급자의 저항만 부각되고 중요성이 논의되지는 않았다. 실제 계속 논쟁이 크게 벌어진 부분은 재정충원 문제였다.
재정확충을 하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이 상식처럼 간주되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 준조세에 따르는 보험료는 국민이 선택할 수 없다. 거기다 가입자와 공급자간 계약보험이 아닌 강제가입 단일보험의 경우는 사실 국가보건의료체계로 봐야 한다. 즉 건강보험재정은 국가책임이 우선된다. 그런 점에서 보험료는 노동소득에만 대부분 연동된다는 점에서 국가의 총재정 부담과 달리 편향적이다. 때문에 프랑스나 대만은 보험료 비중에서도 기업부담을 높이거나, 여러 기여를 넣기 위해 국가가 일반회계에서 건강보험에 상당 부분을 지원한다. 프랑스 52%, 일본은 45%, 대만은 36% 수준의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 있다. 더 나아가 영국,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조세 100%로 건강보장제도를 운영한다.
반면 한국의 국고지원은 매년 떨어져 12%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과 노동자의 분담 비율도 1977년 이후로 기업형 보험구조인 1:1 구조가 유지된다.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논의는 언제나 국고지원 확대 문제와 기업부담을 늘리는 부분부터 집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걸핏하면 건보료 폭탄이나,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보험료가 올라간 지역 가입자 문제 등의 형평성 논란만 제기한다. 정작 중요한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건강보험 기여 문제나 이를 위한 국고지원 확대 문제는 외면하면서 말이다.
결국, 이런 보험료 논의는 국가와 기업책임을 보험료를 내는 국민끼리의 건강보험 불신으로 채우려는 시도다. 애초에 충분한 국고지원과 기업부담을 늘렸다면, 생기지 않을 불신의 불씨가 남긴 결과는 건강보험의 퇴행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이름이 붙은 보장성 강화안인 ‘문재인케어’ 약속도 결국 지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여전히 낮은 수준의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다. 반면 누적된 20조 원에 육박하는 건강보험재정은 재정 관리 성공으로 선전된다. 사실상 국민이 받아야 할 의료 서비스의 비용이 남은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야당 대선후보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이간질시키며 건보료 폭탄을 막겠다고 한다. 조세나 국고확대로 건강보험에 기여해야 할 대안제시도 없는 네거티브 공세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건강보험에 대해서 건보료 폭탄과 재정운용 자랑만 일삼으며 막상 해야 할 책임은 다하지 않는 정치권은 이제 대오각성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의료보장제도의 미래와 가치를 중심으로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불신이 아니라 신뢰에 바탕을 둔 국가 책임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은 민간보험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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