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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자 시인 / 밤의 육체
손을 넣고 휘휘 젓다가 발을 꺼낸다 두 발은 두리번거리다 , 발목 위가 사라진 걸 안다 왼발은 숲으로 오른발은 바다로
귀를 꺼낸다 이것도 한 쌍이구나 열려있어서 지킬 것이 없구나 두 귀가 다가가 옆에 서자 , 나비가 된다 날갯짓 할 때마다 고요에 파문이 일고
입을 꺼내자 윗입술은 떠오르고 아랫입술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구름인가 은하수인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윗입술은 우주를 떠가고 심해에 누워 가만히 지느러미를 흔드는 아랫입술 사이로 유성우가 흘러내린다 고여 있던 말들이 심해어의 눈처럼 흐려진다
무엇을 꺼내도 나로부터 달아나는 밤
빛은 흩어져있는 뼈와 심장과 귀들을 끌어당긴다 잠 깨면 바다와 사막과 행성 냄새가 난다 눈 발 가슴 한 쌍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손목과 손가락 , 종아리와 발목 , 입술과 혀는 붙어서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
발바닥에 풀물이 든 채 모래가 묻은 채 걷다가 문득 발 둘은 돌아본다
― 『리토피아』, 2018년 가을호.
김유자 시인 / 이름들
흘러간다 물고기들 사이로 물풀에 찢기며 모래를 들썩이게 하며 흘러가는 것만을 할 수 있다는 듯이 흘러가다 문득 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끌려 올라가다 막다른 골목을 밀며 나아가고 골목은 자꾸 뾰족해지고 길어지고 갈라지고 고여서 깊어지는 감정 같아서 가라앉고 쓸려 가고 넘쳐흐른다 시냇물 성에 폭포 입김 빙하 바다로 출렁이는 이름들 새벽이면 잎사귀 위에 흔들리는 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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