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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3) 아나운서 이정민 체칠리아

by 파스칼바이런 2021. 12. 18.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3) 아나운서 이정민 체칠리아

20년차 이정민 아나운서의 새 꿈, 어려운 아이들 지원 시스템 만들고파

가톨릭평화신문 2021.12.12 발행 [1641호]

 

 

 

 

얼마 전 내년에 서울에서 개최될 시그니스(SIGNIS) 세계총회를 준비하는 조직위원회의 출범 미사가 있었다. 시그니스는 TV, 라디오 등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으로 100여 개국에서 참여하고 있다. 이날 미사는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소수 인원이 참여해 넓은 주교좌 명동대성당 코스트홀이 휑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런데 미사 후 발대식에서 MBC를 대표하는 이정민(체칠리아)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자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큰 키에 저음인 그녀의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오며 세련된 진행 능력과 순발력은 임명장 수여식 때 더욱 빛났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들을 호명할 때 긴 프로필을 몇 단어로 압축하면서 이름을 불러 분위기를 북돋웠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건강하고 반듯하며 우아하다.

 

 

▲ 이정민 아나운서(오른쪽)가 지난 8월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린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 조직위 공식 출범식에서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저희 집안은 조부모님 세대부터 천주교 신자셨고 어머니는 결혼 후 천주교인이 되셨어요. 저와 오빠는 유아세례를 받았고 초등학교 때 첫 영성체, 고등학교 때 견진성사를 받았어요. 모태 신앙인 거죠. 주일학교 참석은 학교에 가는 것처럼 당연했어요. 식사 전 기도와 잠자기 전 기도, 주일미사, 성경 읽기, 묵주기도, 화살기도 등이 일상이었어요.

 

▶일상이 거의 수도원 수준인데요?(웃음) 학창 시절엔 어떠셨나요?

 

해운대여자고등학교 시절 때는 한 가지 더 특별한 루틴을 가졌어요.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 성당에 들러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씩 기도를 드렸어요. 그래서 학교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새벽 6시엔 집을 나서야 성당에 들를 수 있었어요. 3년 동안 학교 가는 날은 하루도 빠지지 않았어요.

 

▶그런 고등학생이 있다는 것이 대견하고 기특하고 놀라운데요. 사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쉬운 일이 아닌데요?

 

지금 생각하면 한겨울에는 너무 춥고 길이 무서워 종종걸음으로 땅만 보며 성당까지 걸어갔던 장면이 떠올라요. (웃음) 무슨 간절함이 나를 움직였을까 생각하면 고요한 아침,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감실에서 나오는 불빛 옆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예수님의 온화함이 따뜻한 음성이 되어 들려오던 기억이 뚜렷해요. 거기서 받은 위로로 팍팍했던 학창 시절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제 인생에서 큰 힘이 되는 시간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셨나요?

 

철부지 어린 마음에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고 정신과 의사나 기자가 꿈이었어요. 정작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 기자가 됐어요. 기자로 2년을 근무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아나운서를 지원하게 됐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여성 1명을 뽑는 MBC 아나운서에 합격했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셈이죠. 이제 아나운서 20년 차인데 되돌아보면 자랑스럽고 대견했던 기억보다는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만 떠오르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인가요?

 

때마침 아이들에게 피자와 치킨을 사주었을 때 물어봤어요. 고맙게도 두 아들이 엄마는 사랑이 넘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저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요. 물론 훈육도 게을리하진 않아요. 아이들이 언제라도 달려와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너무 큰 욕심인가요?(웃음) 그렇게 충분히 사랑받고 나면 홀로서기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철저히 홀로된 순간을 보내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아요. 동굴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혼자 산에 오르거나 혼자 차를 몰고 가까운 공원을 찾아요. 아니면 1~2시간만 나만의 시간을 달라고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방 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아요.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회복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누구에게 조언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 다만 20대인 후배들에게 젊음이 그 자체로 얼마나 찬란한지 알려주고 싶어요. 그 팔딱거리는 에너지를 외면하지 말고 온전히 자기편이 되어주길 바라요. 나이가 들어가면 뜨거운 가슴은 식어갈지 몰라도 은근하고 묵직한 에너지들이 삶을 비춰줄 테니 나이 들어가는 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고도 싶어요. 결국, 그렇게 보면 매 순간 지금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앞날은 또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도 되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요?

 

▶이정민 체칠리아의 꿈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든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게 꿈이에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적절한 기부처를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돕고자 하는 마음들을 10세 이하 어린이들과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교육이든 보육이든 그밖에 그 무엇이든 말이죠. 앞으로 제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중이에요.

 

▶가장 즐겨 하는 기도는 무엇인가요?

 

학창 시절 매일같이 성당을 가며 하느님과 저는 독특한 친분(?)이 쌓였다는 믿음이 있어요. 친해진 것 같아요. 저만의 생각인가요?(웃음) 그래서 혼자서 중얼중얼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어요. 만약 옆에서 누가 내가 웅얼거리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요. 그럴 때 주님이 그냥 옆에 계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매 순간의 희로애락을 다 주님께 중얼거리죠. 때론 막 화도 내고 원망(?)도 해요, 내가 지금 너무 아프다고 힘든데 어디 계시느냐고, 왜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두시느냐고 따질 때도 많아요. 그런데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면서 결국 항상 깨달음을 주세요. 지나고 보면 한순간도 주님은 절 혼자 내버려 두신 적이 없단 걸 말이죠. 그래서 잘 알기에 이젠 조금씩 기다리는 법도 배워 가요.(웃음)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나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주님께서 주신 나의 소명이 무엇일까? 늘 고민하게 되는 구절입니다.

 

인터뷰 내내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크고 깊은 뿌리는 어릴 때부터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기도와 신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앳된 여고생 이정민 체칠리아가 추운 아침 새벽에 일어나 두꺼운 옷을 입고 집을 나서 부산의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도하기 위해 성당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오래 생각날 것 같다.

 

허영엽(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신부